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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와 융, 영혼의 편지 -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두 거장의 마지막 가르침
미구엘 세라노 지음, 박광자.이미선 옮김 / 생각지도 / 2025년 11월
평점 :

"생각지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칠레의 외교관이자 작가인 미구엘 세라노의 《헤세와 융, 영혼의 편지》를 통해서 분석심리학의 대표 칼 구스타프 융C.G.Jung과 문학의 거장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의 생각을 엿보았다. 제목만 보고 헤세와 융이 주고받은 편지인 줄 알고 선택했다. 나치에 의해 출판이 금지되었던 작가 헤세와 나치에 동조한 게 유일한 오점으로 남은 심리학자 융이 어떤 대화를 했을지 궁금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최고의 두 지성 간의 대화를 이해했을 리 없으니 궁금해하지 말걸 그랬다.

p.33. "나는 우파니샤드 혹은 베단타보다 중국의 지혜에서 더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완독하는 데 너무나 오래 걸렸고 이해는 꿈도 못 꾸고 정말 두 지성의 생각을 맛만 보았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답을 저자 세라노가 나름 친절하게 들려준다. 헤세의 생각을 또 융의 생각을. 그런데 헤세와 융 그리고 세라노의 연결 고리가 문제였다. 인도. 10여 년간 인도 대사로 재직했던 세라노는 인도 문화나 신화에 대한 지식이 상당한 듯 보였고 동양 사상에 진심이었던 두 지성과의 대화를 그쪽에서 시작해서 그쪽에서 끝냈다. 그노시스파의 신 '아브락사스'도 힘들고, 자기 self와 자아 ego를 구분하는 것도 힘들다. 검색의 힘을 빌려 완독할 수 있었다.
p.120. "<자기>란 그 중심은 어디에나 있지만, 그 둘레는 아무 곳에도 없는 원입니다."
세계적인 역사학자 토인비와 저자 세라노의 대화를 보고 조금은 자신감을 회복했다. 토인비도 융의 심리학이 어렵다고 하고 있다. 인도의 신화에서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찾고 인간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헤세의 생각도 재미나고 그 생각을 이해하고 글로 옮긴 세라노의 깊이 있는 성찰도 흥미롭다. 두 지성과의 네 번씩의 만남에서 느끼고 알게 된 이야기를 솔직 담백하게 들려주고 있는 데 정말 깊다. 생각의 심연을 만나본 듯하다.

신화와 상징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두 지성의 말년을 만나본 저자 세라노의 이야기는 1965년에 첫 선을 보였다. 그런데 아직도 핫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헤세나의 생각을 잘 모르는 문외한인 탓도 있겠지만 이 책 속에서 만나게 되는 두 지성의 생각과 삶을 대하는 진솔한 모습이 시대를 초월하는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는 것 같다. 오랜만에 지적으로, 심적으로 성장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p.128. "내가 말하는 것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가 말했다.
"시인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융의 이야기처럼 두 지성의 이야기는 '시인'만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두 지성과의 만남을 통해서 삶에 대한,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노력하고 있는 저자 세라노와의 만남은 올겨울 지적 여행의 시작으로 충분할 것이다. 《헤세와 융, 영혼의 편지》가 주는 지적 즐거움은 '주석'만으로도 만족스러울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