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 광대
권리 지음 / 산지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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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권리 작가의 첫 소설집<폭식 광대>산지니를 통해서 만나본다. 제목도 표지 그림도 특색이 강해서 책 속에 어떤 강한 이야기들이 들어있을지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책 속의 단편들은 그다지 강한 충격을 주는 이야기들은 아니다. 오히려 충격보다는 슬픈 미소를 띠게 하는 블랙코미디 같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들을 통해서 만나보는 네 편의 이야기는 정말 쉽게 읽을 수 있는 편안한 책이다. 대부분의 단편 작품들은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해서 읽기도 어려움을 주는 듯한데 이 작품집 속의 이야기들은 상상 속의 동화를 들려주는 듯해서 단편 소설의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광인을 위한 해학곡' 장곡도라는 예술가의 삶을 통해서 예술계의 진실성을 이야기하면서 양면성을 보이는 상업성과 예술성의 괴리를 우리들의 삶 속으로 끌어들인 작품인듯하다. 괴짜 포머먼스를 통해서 이름을 알리고 그 유명세를 등에 지고 대중 앞에 섰던 예술가의 이야기에서 남에게 과시하기 좋아하는 주위에 몇몇 사람들을 떠오르게 된다.


'해파리' 작가는 인천 앞바다에 해파리를 등장시켜서 웃기고도 슬픈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김부겸이라는 가정에서 소외된 아버지와 마닐라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한국에서는 허드렛일을 하는 필리핀 청년 토니의 대화를 통해서 이주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 가정에서 아버지로서의 위치를 찾아보려고 토니와 함께 나선 해파리 사냥은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구멍' 사회의 근원을 어머니의 생명력에서 찾는다면 우선 여성의 자궁을 떠올리게 되고 그 연결선상에서 떠오르게 되는 단어가 구멍인듯하다. 모든 생명의 근원. 하지만 이 작품 속 구멍은 생명의 근원이 아니라 생명을 빼앗아버리는 커다란 천체의 '블랙홀' 같은 존재이다. 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아가는 블랙홀은 거대 자본의 그릇된 권력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 그릇된 권력에 맞서는 공권력은 너무나 미약하지만 그나마 퇴직한 늙은 소방관이 '소녀'의 꿈을 지켜주고 있다.


'폭식 광대' 제목부터 너무나 끌리는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여기 사람이 있어요." 라는 재개발 현장에서 말을 듣고 쓴 작품이라고 한다. 판타지 소설의 영웅처럼 등장한 폭식 광대는 한순간 괴물로 변하게 된다. 폭식 광대 자신이 변하는 게 아니라 그를 대하는 사회가 변하게 된다. 자본주의의 욕망을 인간의 가장 기본이 되는 식욕에  견주어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듯하다. 돈을 향한 욕망이 커질수록 많은 냄새나는 비리들이 사방에서 악취를 더하는 게 되는데 폭식 광대의 욕망의 끝은 순조로울지 ...


네 편의 이야기 모두 너무나 즐겁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주제가 무겁다고 해서 읽기도 무거워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일수록 가볍고 위트 있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위트와 재미가 있는 작품집인 듯하다. 소외된 이주노동자, 삶의 터전을 잃게 된 많은 재개발 지역의 서민들, 어렵게 하루를 버텨가는 우리 사회의 아버지들까지 많은 사회 문제들을 함축해서 보여주면서도 너무 무겁게 흐르지 않은 이야기 흐름이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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