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P.135 예술은 시대의 소음 위로 들려오는 역사의 속삭임이다.

 

전 세계 베스트셀러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가 맨부커상 수상 이후 발표한 첫 장편 소설 시대의 소음을 만나 본다. 언젠가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세 번의 기회를 만난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세 번의 행운이 찾아왔을 때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 언제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 행운을 잡지 못했을 때의 아쉬움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늘 깨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야기의 주인공 쇼스타코비치는 세 번의 기회가 아니라 세 번의 고통스러운 불운을 맞이하게 된다. 물론 그 불운을 행운으로 바꿀 수도 있었지만 주인공은 적극적으로 바꾸려 하지도 않고 소극적으로 피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흐르는 데로 방치한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커져만 가는 소음을 그가 가장 사랑하는 음악으로 덮으려고 한다. 작가는 그 과정에서 주인공 쇼스타코비치가 느끼는 인간으로서의 아픔과 고뇌 그리고 예술가로서 느끼는 좌절과 고통을 이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실존 인물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더욱 흥미롭게 접할 수 있다. 러시아의 어두웠던 시간을 살아야 했던 예술가들이 어둠을 대처하는 여러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처럼 어둠 속에서 촛불에 의지하고 견디는 음악가부터 어둠을 등지고 적극적으로 어둠을 없애 보려는 예술가, 어둠을 뒤로하고 자신의 삶을 찾으려 하는 예술가 그리고 어둠 속 소음에 동화되어 어둠을 더욱 짙게 하려는 예술가들까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러시아의 예술가들의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 쇼스타코비치는 19세에 첫 번째 교향곡을 발표했을 정도로 음악의 신동이었다. 승승장구하던 음악의 신동은 스탈린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시대의 소음속에서 자존감을 버리고 그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려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가족과 음악을 지켰지만 그의 인간으로서의 자존과 예술가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은 버리게 된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혼란 속에서 보여주었던 우리 지식인들의 삶을 보는 듯해서 이야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듯하다. ‘소음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 많은 이데올로기들이 판치던 시대를 살아던 지식인들 그리고 예술가들의 삶이 아마도 주인공 쇼스타코비치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야기는 세 번의 윤년마다 격은 쇼스타코비치의 불운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1936년 생명의 위협을 느낀 주인공이 아파트 현관에서 작은 가방과 함께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시작된 고통은 음악에 대한 열정과 가족을 지키려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으로 극도의 자기혐오 속에서 꼭두각시처럼 인생을 사는 1948년을 거쳐 끝내 1960년 쇼스타코비치의 마지막 남은 아주 작은 자존감마저 버리게 한다. 사람들의 목에 칼을 겨누는, 동료 예술가들을 숙청했던 공산당에 가입을 한다. 그가 끝까지 하고 싶지 않았던 그렇게 지키고 싶었던 자존감은 이미 끝나버린 스탈린 시대의 공포와 함께 사라지고 만다.

 

작가가 말하는 시대의 소음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역사의 흐름 속에서 후대에는 아무런 갗 없는 것들이라 생각된다. 이제는 살아진 많은 이데올로기들과 그 속에서 파생된 이념들이 그것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소음들이 우리들 정신과 삶을 혼돈 속에 머물게 하고 있는 듯하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행복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기보다는 자기 자리를 지키려 남에게 피해를 주고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 듯해서 안타깝다. 아직도 우리들 주위에 남아 있는 소음들을 쇼스타코비치가 그랬듯이 아름다운 음악으로 바꿀 수 있는 날을 그려 볼 수 있게 해주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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