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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 불일암 사계
법정 지음, 맑고 향기롭게 엮음, 최순희 사진 / 책읽는섬 / 2017년 5월
평점 :
며칠 전 할아버님과 영원한 이별을 했다. 아흔이 넘은 연세에 집에서 돌아가셔서인지 모두들 호상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죽음도, 어떠한 이별도 좋은 일은 아닌 듯하다. 할아버님께 잘 해드리지 못한 아쉬움과 죄스러움에 더욱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다.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런 생각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 준 책이 있어서 만나 본다.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법정 스님의 따스한 글 중에서도 지친 마음에 편안함을 주는 글들이 담긴 '길이 아니면 가지말라'가 그것이다.
이 책에는 스님의 따스한 마음이 담긴 글과 불일암의 사계를 담은 소박한 사진들이 함께한다. 법정 스님의 깊은 사색을 느낄 수 있는 훌륭한 글들이 분주하지 않게 편안함을 주며 담겨있다. 글솜씨가 훌륭한 게 아니라 글에서 느껴지는 깊고 큰 울림이 훌륭하다. 커다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스님의 글을 볼 수 있어서 좋다. 글 속에서 잠시나마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사진을 우리에게 보여준 이의 이력이 소박한 사진들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 듯하다. 이 책 속의 사진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 살다간 최순희가 불일암을 찾으며 찍었던 것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는 중간중간 아마도 평생을 짙은 어둠 속에서 삶 속에 죽음을 느끼며 살아갔을 최순희의 삶도 작가 정지아의 글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정지아의 글을 읽고 보는 사진은 프로 사진작가가 찍은 작품보다 더 깊이 있게 느껴진다. 소박한 사진들이지만 특별함을 담고 있다.
어쩌면 사진을 눈이 아닌 마음으로 찍어낸 마지막 빨치산의 삶이 우리를 사진 속 불일암으로 이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곳에서 평생을 훌륭한 수도자의 길을 걸은 법정 스님과 스님의 그림자 속에서 삶의 평온과 위안을 찾으며 살다간 최순희의 향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훌륭한 글들과 특별한 사진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향기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책이다. 불일암의 사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들 인생이 고스란히 배경이 되어 삶의 향기를 자아내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