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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투스는 베레니스를 사랑하지 않았다
나탈리 아줄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P.143. 당신과 멀리 떨어진 나의 영혼이 홀로 여위어간다.
오랜만에 아름다운 글들이 넘치는 고전 같은 소설을 만나보았다. 처음 도입부부터 조금은 난해하게 느껴져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닌듯했다. 그런 섬세하고 수려한 문장과 특색 있는 내용으로 이 작품은 2015년 공쿠르상과 페미나상의 최종 후보작으로 선정되었고 저자 나탈리 아줄레에게 메디치상을 수상하게 한 수작이다.
P.153.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감미롭지도 다정하지도 않으며, 증오보다 사랑에 더 가까운 건 없다.
도입부를 읽다가 로마사와 장 라신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고 다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특이한 경험을 했다. 우선 제목에 등장한 티투스와 베로니스는 로마사에도 등장하는 인물들이지만 이 소설의 시작을 열고 끝을 맺는 인물들이기도 해서 흥미롭다. 로마사의 기록에 의하면 티투스 황제는 로마의 황제가 되기 위해 유대 왕의 누이였던 베로니스와의 사랑을 버리게 된다. 즉 사랑을 버리고 로마를 선택한다. 이 소설의 시작에 등장하는 티투스도 사랑하는 베로니스를 버리고 그의 아내 로마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돌아간지 1년 만에 소설 속 티투스는 베로니스를 그리워하며 죽음을 맞는다. 로마의 황제 티투스가 26개월이라는 짧은 재임기간을 뒤로하고 42살의 나이로 병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마도 사랑하는 여인을 버린 탓일지도 모르겠다.
P.196. "나는 그를 사랑해서 그를 피합니다. 티투스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떠납니다!"
소설 속 베로니스는 실연의 아픔을 잊기 위해 라신이라는 작가의 글을 찾아서 읽는다. 여기에서부터 작품은 장 라신의 삶과 그의 창작에 대한 열정을 담기 시작한다. 장 라신이라는 작가는 17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극시인 이자 극작가라고 한다. 내게는 생소한 이름이었지만 그는 남성이지만 이별의 아픔과 슬픔을 안은 여성들의 심리를 섬세하고 디테일한 글로 너무나 잘 표현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마도 이야기 속 베로니스는 그녀의 아픔과 슬픔을 달래기 위해 그의 작품을 선택했을 것이다.
P.270. 시가 발음되자마자 바로 이해된다면 그건 투명한 물이나 다름없어. 시는 음악처럼 들어야 해.
이 정도 두께의 소설은 하루 정도면 완독하지만 이 작품은 화려한 미사여구와 섬세한 심리 묘사 등으로 며칠 동안 내 손에 머물렀다. 사랑의 기쁨보다는 다가온 사랑을 느끼기도 전에 이별부터 준비하는 장을 보면서 그는 사랑보다는 이별의 감정에 더 능숙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아마도 많은 여인들의 실연의 아픔과 슬픔을 달래줄 수 있는 글을 남겼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책장을 덮고 장 라신의 작품을 찾아 읽어보려고 한다. 작가가 장 라신의 작품을 통해서 느꼈던 감정들을 나 또한 느껴보고 싶어서이다. 하지만 그 감정은 작가와는 많은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사랑보다는 아름다운 이별을 꿈꾸게 하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