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이펙트
페터 회 지음, 김진아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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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2. 트라우마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끊임없이 그 자리로 되돌아간다. 이제는 그 무엇도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 그리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쓴 덴마크 작가 페터 회가 2014년 발표한 장편 소설을 만나 본다. 문학을 전공했지만 데뷔 전까지 무용수와 배우 등 여러 다양한 경험을 한 색다른 이력을 가진 작가의 작품 수잔 이펙트를 현대문학을 통해서 만나 보았다. 작가의 이력에서 볼 수 있듯이 작품의 전개가 평면적이지 않고 정말 입체적으로 긴장감 있게 흘러간다. 그 흐름 속에서 작가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고쳐줄 정의를 기다리고, 또 무너진 윤리속에서도 사랑을 찾으려 하고 있는 듯하다. 

P.271. "우리들의 미래는 실수에서 뭘 배우는 미래가 아닙니다. 실수가 있었다는 걸 인정하기도 싫어하는 미래예요."


소설은 인도에서 각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로 추방되기에 이르는 네 명의 가족들이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들 가족들은 평범한 가족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진실을 말하게 하는 특별하고 신기한 능력을 가진 가족들이다. 그래서일까? 이들 가족의 생활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정말 이대로 가족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평범한 가족과는 다른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중 가족을 둘러싼 의심스러운 사건들이 발생하고, 그 사건들을 파헤쳐 가면서 가족들 서로 의 사랑을 새롭게 확인한다. 

P.394. 시도해봐야 소용없었다. 인간사이의 사랑과 정을 이해하는 것은 원래부터 불가능하니까. 그리고 그 감정이 학대와 얼마나 가까운지도.


수잔과 그녀의 가족들은 '미래위원회'라는 비밀 조직을 조사해가면서 조금씩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와 다가가면 갈수록 알 수 없는 조직의 힘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 이상한 가족들은 수많은 죽을 고비 속에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힘을 내면서 그 조직의 중앙을 향해 직진한다. 흥미롭고 긴장감 있게 전개되던 이야기는 2부에서 잠시 쉬어가는 듯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2부에서 보이는 가족들 간의 대화를 통해서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가족들이지만 인간 본성인 사랑을 간직하고 아직은 무너지지 않은 그들 간의 사랑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결국 3부에서는 과학자 수잔이 아닌 쌍둥이 아이들을 지키려는 엄마 수잔의 사랑을 볼 수 있게 된다.


P.423.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제 새끼들을 위험에서 구해내도록 프로그래밍된 생물학적 기계였다.


많은 아름다운 문장들을 만나볼 수 있는 감성적인 글은 아니지만 솔직하고 담백한 문체가 마음에 쏙 드는 재미난 소설이었다. 많은 살인이 등장하지만 살해된 이후의 장면만이 짧게 묘사되고 있어서 너무 디테일한 피의 묘사로 인한 거부감은 없었다. 스릴러의 묘미는 긴박한 사건의 진행 속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결말에 찾아오는 반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반전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이야기여서 너무나 좋았다. 평범하지 않은 능력을 가진 가족의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이야기가 담긴 정말 매력적인 작품을 만나서 따뜻한 봄날의 하루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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