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유언
안드레이 마킨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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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어린 시절 여름이면 누나와 함께 시베리아의 오지 사란짜로 할머니 샤를로트를 만나러 간다. 그곳에서 할머니의 이야기와 책을 통해서 "프랑스" 를 만나게 된다. 러시아 속에서 프랑스인인 할머니를 통해 만나게 되는 프랑스는 어린 소년을 상상 속으로 이끌게 되고, 그 속에서 소년은 러시아의 황제도 만나고, 프랑스의 대통령도 만나는 상상 속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 여행을 통해서 러시아 소년은 프랑스를 꿈꾸게 되고 자신도 프랑스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소년의 눈에 비친 할머니 샤를로트는 소년이 성장하는 동안 커다란 사랑으로 소년의 생각을 크고 깊게 만들어 주고 있는 듯하다. 그런 소년도 성장과 함께 조금씩 자신만의 세계를 갖게 되고 부모님의 죽음과 함께 자신의 어린 날들을 함께했던 할머니에 대한 존경심이 조금은 줄어들게 될 때쯤 소년은 청년이 되어 있었다.


p.190. 본질적인 것은 설명될 수가 없다. 전달될 수도 없다. 그리고 이세상에서 그 무언의 아름다움으로써 나를 괴롭히는 모든 것들,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 모든 것들이 내게는 본질적으로 보였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은 곧 본질적인 것이다.


주인공은 어려서는 러시아 속 프랑스인으로 아이들의 따돌림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청소년기에는 프랑스인이기보다는 러시아인으로 살아가는 게 더 즐겁다는 생각에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게 된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프랑스어로 글을 발표했을 때는 프랑스 안의 러시아인이 되어있었다. 즉, 샤를로트 할머니가 러시아에서 언제나 이방인이었듯이 주인공도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프랑스와 러시아 양쪽에서 다 이방인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어느 한쪽에서는 이방인이 아니고 싶었을 주인공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이방인 아닌 이방인들을 생각해 보게 된다.


p. 233. 삶이란 사실 대충 써 놓은 끝없는 초고 같은 것이어서 사건들은 잘못 배열되어 서로 겹치고, 등장인물들은 그 숫자가 너무 많아 말을 할 수도, 고통을 느낄 수도, 서로 사랑하거나 미워할 수도 없다.


 러시아 vs 프랑스..전체 vs 개인..이 작품에는 개인의 자유보다는 전체를 더 중요하게 여기던 러시아의 사회주의와 자유분방한 개인의 자유를 인정해주는 프랑스의 민주주의가 주인공의 성장과 함께 갈등의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는 듯하다. 주인공은 할머니를 통해서 프랑스의 자유를 접하고 학교에서는 공산주의를 배우며 성장한다. 그리고, 결국 조국 러시아를 버리고 할머니의 나라 프랑스로 망명한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할머니에게서 배우고 느꼈던 자유가 주인공의 결정에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말에서 밝혀지는 진실이 주인공으로 하여금 그 결정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할 것 같다.


이 책을 처음 읽으면서 솔제니친의 작품 "이반데니 소비치의 하루" 를 떠올리게 되었다. 물론 시베리아라는 동일 배경과 두 작품의 작가가 러시아인이라는 데에서 오는 느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작가 안드레이 마킨의 문체가 문득 고전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이 책은 1995년 많은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정말 그 상들을 받을 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너무나 아름다운 시를 보는 듯한 글들이 담겨 있다. 한 문장 한 문장들이 마치 고전 속에서 보는 듯한 주옥같은 글들로 가득 넘치고 있다. 저자를 소개하는 글을 보니 그의 문체가 시적이라는 평가와 너무나 고전적이라는 평가를 함께 받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가벼운 소설들보다는 정말 좋았다. 내용도 문체도 너무나 훌륭한 작품이다. 이 겨울이 가기전에 다시 한번 샤를로트와 주인공을 만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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