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간관리국
캘리앤 브래들리 지음, 장성주 옮김 / 비채 / 2026년 3월
평점 :

"비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제목부터 SF 소설이라는 티를 팍팍 내는 캘리언 브래들리의 데뷔 작품인 장편소설 《시간관리국 The Ministry of Time 》을 만나보았다. 보통의 '타임슬립' 작품들은 현재에서 과거로 가던, 현재에서 미래로 가던 누군가 아는 얼굴이 있다. 그래서 조금씩 적응하면서 시간을 오가는 원인을 찾는다. 그런데 이 소설은 배경이 제국주의의 상징인 영국이라서 그런지 시작부터 섬뜩하다. '시간 여행' 방법을 알아낸 영국 정부는 과거에서 5명의 사람들을 이주시킨다. 자기들 마음대로.
전쟁이나 재해 등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영위하게 해준다는 것이 '시간관리국'의 목적은 아닐 것이고 이들이 각기 다른 과거에서 '이주자'들을 데려온 까닭은 무엇일까? 그런데 도입부는 이런 의문을 품고 《시간관리국》을 접하고 있는 것이 다소 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기존 연봉의 세 배를 준다는 소식에 '가교'가 된 나와 19세기 영국 해군 중령이었던 이주자 그레이엄 고어 사이의 '썸'이 핑크빛 사랑으로 이어질지가 더 궁금하게 하는 시작이다.

세기를 뛰어넘는 시간 여행을 온 이주자들이 현재에 적응하는 게 가능할까? 가치관이라는 것은 머리는 물론 몸으로도 체득되고 유전자가 기억하는 것인데 19세기 인물들이 21세기 런던에 적응시킨다는 생각은 도대체 누가 한 것일까? 섹스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리는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진 인물들이, 대가족 제도하에서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던 사람들이 가교를 통해서 어느 정도까지 오늘을 이해할 수 있을까? 고립된 사람들의 마음을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p.537. 용서와 희망은 기적이다. 그것들 덕분에 당신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다. 그것이야말로 시간 여행이다.
시간 여행 이야기이지만 《시간관리국》은 시간보다는 인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건너온 시간의 차이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감정을 견뎌야 하는 사람을 그리고 있다. 외로움에 괴로워하고 차이가 만든 고립을 견뎌야 하는 인간의 감정을 위트와 해학 속에 스며놓았다. 웃음 속에 고통이, 미소 속에 슬픔이 느껴지는 이주자의 낯선 감정의 시작은 어디일까? 같은 공간 속에 함께하지만 다른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의 인위적으로 만든 낯선 조합이 그 시작이 아닐까?

갑작스러운 살인 사건으로 이야기의 흐름은 빠르게 가속 페달을 밟는다. 이제부터는 로맨스가 아니라 스릴러로 장르 변환을 시작한다.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두께가 말해주듯 많은 이야기들이 다양한 방향으로 흐른다. 반전을 만나는 순간 복선을 떠올리고 앞으로 돌아가 다시 확인한다. 작가의 다음을 기대하는 까닭이다. 복선은 꽁꽁 숨기고 반전은 크게 폭발시키는 엄청난 스토리텔러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