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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언스
곤도 후미에 지음, 남소현 옮김 / 북플라자 / 2024년 12월
평점 :
"북플라자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p.164. 설령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때 그 시간에 만났다는 사실에 가치가 있다. 그런 친구도 있는 것이다.
"네 할아버지를 죽여 줄게. 대신 남편을 죽여 줘."라는 띠지의 섬뜩한 문구가 시선을 강탈하는 흥미로운 소설을 만나보았다. 작가 곤도 후미에는 세 명의 소녀를 세 건의 살인 사건으로 연결하고 있다. 그런데 그 연결이 너무나 촘촘해서 쉽게 풀 수 없는 매듭으로 소녀들의 인생 전체를 옭아매고 있다. 그리고 그 연결에는 사회 전반의 문제들이 함께 묶여있어서 풀기보다는 끈어내야 할것만 같다. 학교 폭력, 여성 납치 성폭력, 아동성추행, 가정 폭력까지.
마감에 쫓기던 작가의 눈에 들어온 편지 한 통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무시할 수도 있는 내용의 편지였지만 '저희 셋의 관계'라는 문구가 작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고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달라는 편지의 주인공 '유리'를 만난다. 그리고 유리에게서 자신이 중학생시절부터 중년이 된 지금까지 품고있던 엄청난 비밀들을 듣게 된다. 그 속에 세건의 살인 사건이 담겨 있었다. 놀랍게도 두 건의 살인은 중학생 시절에 벌어진 일이었다.
p.62. 잔인함과 상냥함은 때때로 한곳에 공존하기도 한다.
이야기의 주요흐름은 소녀들의 범죄 행위 자체에 있지 않다. 세 건의 살인이 모두 서로를 위해 각자가 벌인 사건이기에 범인은 세 명이다. 어린 소녀들이 그런 무서운 일을 할 수 있게 한 무모한 용기는 어디서 온 것일까? 왜 어른이 되어서 다시 또 살인을 저지르게 된걸까? 소녀들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서로를 만난적이 없다. 전화 번호도 모르고 살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마지막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어둠속에서 상대의 얼굴도 확인하지 않고 친구의 말만 믿고 술취해 잠든 친구의 남편을 살해한다. 가정 폭력에 힘들어하던 친구 '마호'를 위해.
p.100. 친근함이 저주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첫 번째 살인도 납치되려는 마호를 구하기위해 '유리'가 남자를 칼로 찔렀던 사건이다. 하지만 소년원에는 또 다른 친구 '사토코'가 들어갔다. 이들 세 친구에게는 어떤 연결 고리가 있었을까? 그 고리는 외로움인듯하다. 소외된 아이들. 소외될 수 밖에 사회가 만든 아이들. 친구가 없던 소녀들이 각자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준 사연이 매듭으로 이어진듯하다. 읽는 내내 불편했다. 왕따, 학교 폭력, 가정내 성추행 그리고 가정 폭력까지. 우리 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고 있는 듯해서.
그런데 소설 의뢰를 받은 작가가 이 소녀들과 같은 중학교 동창이라는 점이 놀라운 반전을 만든다. 반전도 놀라웠지만 작가가 세 소녀를 모두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 더 놀라웠다. 3년 동안 같은 반이 한 번도 안되었을까? 어느 누구의 존재도 무시되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무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무시받던 아이들의 어두운 그림자가 만든 비극이 너무나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