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바닥 - 제44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이케이도 준 지음, 심정명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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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바닥 果つる底なき》은 인기 작가 이케이도 준데뷔작이다. 1988년 제44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품이다. 20여 년 전 작가의 시작은 어떠했을지 무척이나 기대되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케이도 준 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한자와 나오키』이다. 은행을 중심으로 약육강식에 세상의 모든 권모술수는 다 등장하는 듯한 이야기가 너무나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그 후로도 절대 선도 악도 없는 살아남는 것이 선이 된 조직 생활의 비애와 그 속에서 허우 적되는 인간 정서를 정말 잘 표현한 작품들『샤일록의 아이들』, 『일곱개의 회의』, 『변두리 로켓』 그리고 럭비 이야기가 참신했던 『노사이드 게임』,『하야부사 소방단』등을 정말 재미나게 만나보았다.


p.307. "그렇군,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인종이야, 자네는. 솔직히 말해 부러운 듯도 하고 무서운 듯도 해. 분명 앞으로 더욱 경멸할 만한 인간을 만나게 될 걸세, 이 세계에서는. 각오하는 편이 좋아."


《끝없는 바닥》의 주인공 이기 하루카도 작가의 다른 작품 속 주인공들처럼 '보기 드문 인종'이다. 진실을 덮으라는 윗선의 지시를 무시하고 회의석상에서 공론화한 탓에 본사 기획실에서 니토 은행 시부야 지점으로 발령받았다. 역시 이케이도 준이라는 작가의 시그니처는 아무래도 '은행'인듯하다. 또, 조직 사회에 필요한 인재보다는 정의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점도 작가가 가진 특별한 색이다. 데뷔작이라는 선입견을 끼고 지금의 작가와 20년여 년 전의 작가를 비교해 보는 즐거움도 이 책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 행복이다.


남들은 좌천이라고 하지만 정작 주인공 이기는 은행 지점 업무가 편안하다. 그런 편안한 일상은 어느 날 아침 웃으며 인사한 입사 동기 사카모토의 죽음으로 송두리째 사라지고 만다. "너 나한테 빚진 거다?"(p.11)라는 사카모토의 마지막 말에 의구심을 느끼고 있을 때 이번에는 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한다. 사카모토의 죽음도 의심스러운데 갑자기 사카모토가 은행 돈을 횡령했다는 것이다. 무언가 의심스럽다. 그렇게 의심이 커지면서 이기의 맹활약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된다.


재미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반전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만나게 되는 낯선 단어들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장치인지 20여 년 전과 오늘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즐거움을 배가 시키고 있다. 암거暗渠, 신산辛酸, 언외言外, 무지근한 등. 물론 찾아보지 않아도 문장의 흐름상, 느낌상 알 수 있는 단어들이지만 찾아보면서 읽는 재미가 더 좋을 듯하다.


살인이라는 미스터리에 직장 내 '정치질'이 더해져서 이야기의 흐름이 혼탁해질 때 주인공의 선명한 '선함'이 이야기를 말끔하게 해준다. 이케이도 준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렇듯이 선善이 악惡을 이기고, 소小가 대大를 이긴다. 진부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전혀 지루하거나 따분하지 않다. 도리어 가슴속이 후련해지는 상쾌함을 접하게 된다. 이기의 로맨스도 이야기를 풍부하게 해준다. 이기의 전 여자친구가 두 명 등장한다. 그것도 어려운 처지에 처해있다. 어떤 사랑을 다시 시작하게 될지 몰래 보는 재미를 놓치지 말길 바란다.


이케이도 준의 위트 있는 유머러스한 대화는 볼 수 없지만 지금까지 만나본 작품들의 모습을 조금씩 볼 수 있는 것 같아서 좋다. 세련되지 않은 이케이도 준의 거친 시작을 만나보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꼭 만나보길 바란다.


"소미미디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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