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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서윤빈 지음 / 래빗홀 / 2024년 4월
평점 :
2022년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에 『루나』로 대상을 수상한 서윤빈 작가의 새로운 작품《영원한 저녁의 연인들》을 만나보았다. 책 표지가 보여준 첫 이미지는 로맨스이다. 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흥미로운 SF 소설의 재미를 더한다. 미래의 로맨스, 사랑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미래의 사랑은, 연인들의 일상은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그런데 남자 주인공 나이가 100살이다. 생명 연장이라는 인류의 소망이 이루어진 미래의 어느 날 주인공 유온은 사랑하는 사람의 임종을 지키는 장면으로 처음 등장한다. 정말 아름다운 아니 숭고하기까지 한 장면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설마'라는 단어가 입안에서 계속해서 맴돌게 된다. 설마 그런 직업이 있을까? 설마 '돈'을 목적으로 한 사랑이, 애정 연기가 가능할까? 그런데 100살 온유가 처한 사정을 알게 된다면 온유의 직업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래의 인류는 생명 연장의 소원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 소망에는 '돈'이 많이 들어간다. 국가에서는 평등한 적용을 핑계로 모든 국민을 통제의 손아귀에 넣는다. 장기 임플란트 정기 구독료가 초기에는 국가 지원 등으로 수월하다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선다. 누진 3단계의 심장 임플란트 1년 정기구독료는 105억이다. 정말 엄청난 금액이다. 1년에 105억. 여기서 이야기는 개인 유온의 이야기를 떠나서 사회 이야기로 확장된다.
미래의 인간들은 뇌 활동의 증폭기(?)로 '버디'라는 것을 뇌에 심는다. 부작용이 전혀 없는 기계는 없다. 그렇게 기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고 그렇게 이야기는 유토피아와는 멀어져 디스토피아로 흐른다. 버디라는 기계는 익숙해진다면 엄청 편한 일상을 만들어줄 것 같다. 단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기억이 정확하다는 것이다. 각기 다른 추억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어린 세월부터 일생을 기억하고 산다는 것이 행복한 일일까?
미래에 '가애'라는 직업이 가능한 까닭은 아마도 인류가 지금보다 더 외로운 까닭일 것이다. 한 달마다 뇌를 리셋해야 하는 삶은 어떨까? 장기 임플란트 비용이 없어서 죽음을 선택해야만 하는 삶은 또 어떨까? 미래 과학 발전이라는 배경으로 한 SF 소설이지만 현재 인류의 슬픔과 아픔을 보여주고 있는 듯해서 유온 어르신의 삶을 자연스럽게 응원하게 되었다.
백세 시대라는 생명 연장의 미래에 가까워질수록 돈의, 물질의 위력이 더 커질지도 모른다. 장기 임플란트 구독료가 없어서 부모님의 삶을 지켜드리지 못한다면 어떨까? 미래의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수애와 가애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생명 연장이 이루어진 미래의 사회가 디스토피아가 되어버린 세상이 주는 색다른 재미를 만나보길 바란다.
"래빗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