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에서의 일 년
이창래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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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영원한 이방인 Native Speaker》으로 데뷔와 함께 펜/헤밍웨이상 등 주요 문학상 6개를 휩쓸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반열에 오른 이창래 작가의 신작을 가제본으로 만나본다. 집필 기간이 긴 작가의 성향 까닭으로 이번 작품도 2014년《만조의 바다 위에서》 이후 9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다. 《타국에서의 일 년 MY YEAR ABROAD》은 30년간 다섯 작품을 쓴 작가의 여섯 번째 작품이다. 《타국에서의 일 년》은 첫 문장부터 흥미롭다. '내가 위대하다고들 하는 이 나라 어디에 사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왜 밝힐 수 없는지는 다음 문장에 바로 답해주고 있다. 누군가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답.


하지만 이 소설을 완독한 후에 다시 첫 문장의 질문과 다음 문장의 답을 접한다면 그 답이 미흡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벨과 빅터 주니어)를 위한 잠적이 아니라 자신(틸러)을 위한 은둔일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삶을 살던 틸러에게 타국(하와이, 마카오, 선전)에서의 일 년은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어머니의 부제가 만든 틸러의 결핍이 자신의 고향에서의 삶이 아니라 벨과 스태그노에서의 삶을, 은둔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틸러는 끊임없이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를 생각하고 떠올린다.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인가? 스태그노의 삶과 타국에서의 삶은 어떻게 다를까? 어쩌면 같은 흐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작에 차이가, 틸러의 성장이 두 곳에서의 삶이 전혀 다른 흐름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주인공 틸러는 부자는 아니지만 궁핍하지도 않은 생활을 하며 평범한 대학생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틸러의 삶은 자기 자신의 결정에 의한 흐름이 아니라 누군가의 흐름에 따라가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런 틸러가 아버지의 품을 떠나 퐁과의 동행을 결정한다. 그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모르지만 20대 청년의 해외 투자 여행을 응원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쯤엔 스토리의 흐름에서 퐁은 빠져나간 뒤였다. 그렇게 타국에서의 일 년을 보낸 틸러가 공항에서 새로운 여행을 선택한다.


퐁이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만나보는 즐거움도 틸러의 성장 이야기만큼이나 재미있다. 퐁을 통해서 만나는 중국 문화의 암흑기'문화혁명'과 홍위병 이야기는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을 깊고 폭넓게 만들어주고 있다. 하지만 700여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퐁과의 관계, 여행 이야기보다 더 강렬한 이야기는 벨과 빅터 주니어와의 은둔, 잠적 이야기다. 퐁과의 시작이 '음식'이었다면 빅터 주니어와의 시작도 '음식'이다. 물론 둘과의 음식 이야기에서 틸러의 포지션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절반쯤 되는 지점에서 우리의 길을 찾을 뿐 영영 그곳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그런데도 계속 나아간다. 눈을 뜨고, 입을 크게 벌리고, 준비된 채로.


틸러를 생각할 때 또 빅터 주니어가 떠오를 때 어떤 음식의 냄새가 떠오르게 될지 만나보길 바란다. 퐁과 벨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또 무엇일지 접해보길 바란다. 물질적, 정신적 결님과 함께하는 낯선 곳에서의 낯선 삶이 만들고 있는 '깊은 이야기'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RHK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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