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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이름 붙이기 -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할 때
캐럴 계숙 윤 지음, 정지인 옮김 / 윌북 / 2023년 10월
평점 :
접해보지 못해서 그 가치를 전혀 알 수는 없지만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저자 룰루 밀러가 직접적인 영감을 받았다고 언급했다는 책《자연에 이름 붙이기naming nature》 를 만나본다. 자신을 '과학의 젖을 먹고 자란 사람(p.20)'이라 소개할 만큼 부모가 모두 과학자인 '모태 과학자'이다. 뼛속까지 과학자인 캐럴 계숙 윤이 '생명의 분류와 명명'이라는 분류학을 들여다보다가 '과학'에 의문을 품게 되는 과정을 재미나고 흥미롭게 담고 있는 책이다. 과학 책을 읽고 있는데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까닭은 1992년부터,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뉴욕 타임지》등에 과학 관련 글을 써오고 있는 저자의 필력 덕분인듯하다.
400여 페이지의 분량이니 소설로는 벽돌책이 아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 그것도 처음 접하는 '분류학'을 다루고 있는 책이라 벽돌책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 책이 난해한 과학 책으로 느껴진 부분은 '프롤로그 :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 기이한 사정' 즉 도입부 뿐이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밈(meme)'을 처음 접했을 때의 당혹감을 '움벨트(umwelt)'와의 첫 만남에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검색 찬스를 통해서 움벨트의 뜻을 어렴풋하게 새기고 저자의 친절함 덕분에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직관적인 감각과 엄밀한 과학의 정면충돌할 수밖에 없었던 생명의 분류에서 저자는 인류의 감각적이고 주관적인 감각 움벨트의 실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끝까지 몰입도를 유지한다. 과학을 특히 생명의 분류, 질서라는 쉽지 않은 분류학을 편안하게 안내해 주고 있는 매력적인 과학 책이다. 과학 책도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p.411. 당신은 생명이 존재하는 곳, 당신 주변 어디에서나 생명을 알아보기 시작할 것이다. 아직 너무 늦은 건 아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요구하고 있다.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움벨트를 넘어 그 꽃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꽃의 '이름'을 알아내라고 요구하고 있다. 생명을 과학적인 분석, 이성이 아닌 마음, 감성으로 느껴보라 권하고 있는 소중한 만남이 담긴 책이다. 200 년도 더 전前에 생명 세계 전체에 질서를 부여하고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던 분류학과 계통학에서, 과학에서 '물고기'가 사라지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윌북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