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궁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시공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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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에드거 앨런 포 어워드 수상작 《붉은 궁》가제본으로 만나보았다. 가제본의 표지가 오래전 드라마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의녀가 등장하는 드라마〈대장금〉에 가까운 이야기가 아니라 조선시대 다양한 업무에 종사했던 관비 다모가 등장하는 드라마〈다모〉에 가까운 장편소설이다. 책을 소개하는 글에서 궁에서 벌어진 미스터리 스릴러라 해서 혹했지만 '사도세자'가 등장한다는 글에 흥미는 반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잘 알려진 조선시대 최대의 비극 '사도세자'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p.352. 하지만 평범함은 빼앗겼을 때 비로소 소중한 보물이 되는 법이다.


너무나 솔직한 표지가 알려주듯이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내의원 의녀 백현과 포도청 종사관 서의진이다. 둘의 로맨스 속도는 더디기만 하지만 혜민서에서의 살인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 스릴러의 속도 엄청나게 빠르다. 너무나 빠른 전개는 이야기 속에 빠져 주위를 둘러볼 시간도 주지 않고 결말을 맞이하게 한다. 순삭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미스터리 소설이다. 역사는 사이드 메뉴일 뿐이다. 그래서 이야기가 더욱 재미나고 흥미롭다.


p.238. 나는 사랑하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었다.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다. 이해와 인정을 받고 싶었다.


사도세자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소설은 대부분 정치적인 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즉 왕실, 권력 중심의 흐름을 보인다. 하지만 이 소설은 전혀 다른 흐름을 보인다. 사도세자의 다양한 이야기 중 정설로 받아들여진 것은 사도세자의 '광기'이다. 그 광기로 인해 많은 궁인들이 죽었고 그 기록들은 역사에 남아있다. 그 광기에 희생된 궁녀들의 비극이 이야기의 중심이고 그 비극을 풀어내는 중심에도 내의녀가 중심이다. 내의녀 백현이 혜민서에서 죽은 네 명의 여인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을까? 또 범인으로 지목된 백현의 스승 정수 의녀의 누명을 벗겨줄 수 있을까?


조선시대 가장 천한 신분이었던 관비가 이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가 의녀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장 높은 곳은 궁에서 생활하는 내의녀이다. 엄청난 노력으로 이룬 내의녀라는 자리까지 위태로울 것을 알면서도 스승의 누명을 벗기려는,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백현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또 백현과 함께 조금씩 로맨스를 키우며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종사관 의진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p.359. 나는 사라질 운명인 꿈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 꿈을 떠나보낸다 해서 내 인생을 버린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이름만 있는 백현의 엄마는 기생이다. 하지만 아버지 아니 대감마님은 형조판서다. 서얼 중에 서자도 아니고 얼자인 것이다. 그런데 이 아비라는 인간이 참 한심하고 답이 없는 인간이다. 조선시대 전형적인 양반 캐릭터이다. 그래서 성도 못쓰게 한 것이다. 정말 이 양반 어이없는 '양반'이다. 신분 제도와 성 평등이라는 사회 문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물론 그 모습은 다양하게 변화했지만 그 근본은 같은 것 같다. 상대방을 같은 사람,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모자란 생각. 그 '모자란' 인식을 채워주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시공사로부터 도서(가제본)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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