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시간표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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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2. 그렇게 집안의 모든 문제는 구정물처럼 아래로 아래로 흘러떨어져서 그 집안 모든 사람에게 가장 만만한 존재 위에 고이고 쌓였다. 대부분의 경우 마지막에 그 구정물을 감당하는 사람은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이었다. 딸, 며느리, 엄마, 손녀.


2022년『저주 토끼』로 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고 있는 정보라 작가의 연작 소설집 《한밤의 시간표》를 만나보았다. 처음 만나는 작가와의 첫 만남은 언제나 첫 문장을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고는 한다. 물론 연작 소설집이라서 그 의미는 조금 다르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첫 문장이었다."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p.9) 분명히 누군가가 이 문장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는 이 소설집의 주된 흐름이 될 것이다.


연작 소설의 배경은 외딴곳에 위치한 '연구소'이다. 무엇을 연구하는지도 모르고 연구실 안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온다. 그런 연구소에서 경비 업무를 하는 이들이 주인공이다. 나, 선배 그리고 부소장 등. 소리가 들리면 무시하고 무엇인가 본 거 같아도 무시하고 그냥 앞만 보고 걸으면 되는 연구소 순찰이 이들의 업무다. 순찰인데 눈 감고 귀 막고 다니라니 무언가 이상한 연구소가 분명하다. 조금씩 연구소의 실체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이야기에 더욱더 깊게 빠져들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상처 입은 영혼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큰 이야기 모음집이다. 연구실 302호에 있는 「손수건」에 담긴 사연이 안타까웠고, 「양의 침묵」의 부소장님이 어렵게 살아온 삶이 서글펐다. 「푸른 새」는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뛰어난 스토리텔링 능력을 볼 수 있었던 작품이다. 짧은 이야기에 엄청난 서사를 담아내고 있어서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고양이는 왜」에서 만나게 되는 남자는 '괴물'이다. 그가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은 조금씩 변해가는 인류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사랑과는 점점 멀어지고 집착에 가까워지는, 타인과의 사랑이 아닌 자기애에 빠진 인류의 모습을 보는듯하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약자는 양도 고양이도 아닌 우리들 인간인듯하다. 연구소에 보관된 물건들이, 동물들이 보여주는 두려움보다 인간이 드러내는 악한 기운이 더욱 두렵다.


연작 소설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는 짧은 이야기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찾아보는 것이다. 일곱 편의 이야기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어서 작가 정보라의 스토리텔링 능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를 재미나게 만나본 후에 접하는 작가의 말과 문학평론가 박혜진의 작품 해설은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이다.



"퍼플레인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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