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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숙녀 신사 여러분
유즈키 아사코 지음, 이정민 옮김 / 리드비 / 2023년 3월
평점 :
이 소설《친애하는 숙녀 신사 여러분》은 제목에서부터 작가가 말하려는 의도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보통 말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을 '숙녀 신사 여러분'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관용적인 표현을 영국 항공사에서는 성차별, 소수자 차별이라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청중이 모인 곳이라면 쉽게 들리던 이 표현은 이제 사용하지 않게 될 것 같다. 하지만 관용적인 표현이 내포한 의미를 단어의 순서만 바꾼다고 바꿀 수 있을까? 어쩌면 작가 유즈키 아사코는 변화의 시작으로 이 표현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영어 제목(Tired of taking a backseat to gentlemen)을 해석해 보면 피곤이나 싫증이 보인다. 오랜 세월 남성의 권위에 눌려왔던, 남성의 뒤에 서야 했던 여성의 삶이 보인다. 그리고 이 책에 담은 일곱 개 단편소설에서 다시 한번 지난한 여성의 삶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만난 여성들은 씩씩하고 당당하다. 오로지 '나'로 살기 위한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 멋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또 그런 여성들의 입장을 응원하는 용기 있는 남성도 보인다. 그런데 여성의 입장을 이해하거나 지지하는데 용기가 필요할까? 사람이 사람이 응원하는데 용기가 필요할까?
전작 『버터』에서 보여주었듯이 이번 작품들에도 음식에 대한 미적 감각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 유즈키 아사코는 스토리텔링 능력만큼이나 대단한 미각의 소유자일까? 절대 미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 일본의 유명 작가들의 등장이 재미를 더하는 요소로 추가된다.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과 '나오키상'을 제정한 작가 기쿠치 간을 비롯한 일본의 작가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어 흥미를 더하고 있다.
「Come Come Kan!」은 신인작가 상을 받고 등단한 여성작가의 삶에 기쿠치 간이 끼어들면서 발생한 에피소드들을 담는다. 어느 날 기쿠치 간의 동상이 말을 걸어온다. 기발한 상상은 현실로 이어지고 멋진 이야기를 남긴다.
「둔치 호텔에서 만나요」에도 작가가 등장한다. 자신의 소설의 배경이었던 호텔을 찾은 작가는 변화한 호텔의 모습에 망연자실한다. 불륜의 상징이었던 호텔이 가족 여행의 장소로 변화한 모습은 어쩌면 그만큼 변한 사회상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던 작가를 얼어붙게 만드는 모습도 육아에 대한 편견이, 가족 내에서의 남성의 위상이 만들어낸 결과일지도 모른다.
「아기 띠와 불륜 초밥」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오마카세 초밥집이 등장한다. 물론 소설 속의 초밥집은 전혀 의도로 쓰인다. 그곳에 잠든 아기와 함께 온 젊은 엄마가 등장하면서 불륜의 완성을 꿈꾸던 중년의 남성들에게 빨간 불이 켜진다. 그들은 아기 띠의 여성에게서 자신들의 여성을, 의도를 지켜낼 수 있을까?
「키 작은 아저씨」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인듯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녀'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시대와 사회의 변화는 소녀의 모습을 어떻게 변모하게 했을까? 외모지상주의를 이끌고 있는 성형은 아직도 커다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일반외과는 보이지 않고 성형외과는 차고 넘친다. 열여덟 살 소녀는 성형외과를 찾고 그곳에서 대기하는 짧은 시간 동안 어린아이들을 위한 세계문학전집을 읽는다. 그리고 사회가 원하는, 시대가 바라는 소녀상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상상이상의 재미와 의미를 만나게 해주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아파트 1층은 카페」에 다시 기쿠치 간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배경이 1930년대이기에 살아있는 기쿠치 간을 만날 수 있다. 여섯 단편소설에서 만날 수 있었던 모든 여성들의 삶을 이 한편으로 요약하는 듯하다. 여성전용 아파트에 살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이 흥미와 재미를 끌어낸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당시 여성의 삶과 현대 여성의 삶이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된다. 왜 변하지 않은 것일까?
변하지 않은 여성의 지난한 삶을 여성들 스스로 변화시키자고 외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 소리는 시끄럽지도 요란하지도 않고 조용하고 편안하다. 본능에 가까운 남성보다는 이성에 가까운 여성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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