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 없는 세계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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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7. 우리를 위해주는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게 안심이 됐다.


p.176. "우리는 안 미쳤는데, 사람들이 우리 보고 미쳤다고 하잖아."

창비청소년문학상,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한 백온유 작가의 새로운 작품을 가제본으로 만나보았다. 《경우 없는 세계》라는 제목부터 흥미를 끈다. 경우가 사람 이름이라면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고, 경우가 상황이나 형편, 사정 등을 나타내는 경우境遇라면 형편없이 망가진 사회에서 도리를 이야기하는 소설일지도 모르겠다. 시작부터 미처 알지 못했던 가출 청소년 세계와 접하게 되면서 경우라는 단어의 의미는 잊혔다. 그러다가 소설 속에 등장하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경우라는 인물이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성격도, 행동도 또래인 주인공 인수가 좋아할 만하다. 오래전 드라마에서 접한 적 있었던 '가출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리더십이 있는 아이를 중심으로 때 지어 다니며 오늘을 사는, 내일은 없는 듯 생활하는 아이들. 그런 무리 속에 있는 아이들의 심리를 인수, 성연 그리고 경우를 중심으로 보여준다. 다른 아이들의 모습들도 보여주며 길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실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또 아이들이 오늘을 살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들도 소개한다. 아이들은 거리에서 또 다른 삶을 배운다. 믿었던 어른의 배신에서 많은 것을 배운 친구들은 어른이 되어간다. 가출 청소년을 이용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을 망치는 것은 아이들 자신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어른들이라는 것이 부끄러웠다. 제발 누굴 위해 봉사하며 살지는 못해도 누굴 망치는, 해치는 삶은 살지 말았으면 좋겠다.


불법이나 탈법은 이 아이들에게 의미가 없다. 그저 오늘 하루 따뜻하게 지낼 수 있고 먹을 것만 있다면 만족했고 또 그렇게 하루를 살고 있다. 인수가 그랬고 성연이 그랬고 또 경우가 그랬다. 성연은 조금 터프하게 준법의 경계선을 왔다 갔다 하며 하루를 버텼고, 인수는 그런 성연과 함께하며 오늘을 살았다. 하지만 경우는 조금 달랐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엄마와 함께 살 방값을 마련하려 노력하고 있다. 누구도 가족에게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을 때 경우는 엄마와 함께 할 생각을 하고, 성실하게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아이들이 선택한 '가출'이라는 삶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이다. 아이들 자신들에게 또 옆에서 보고 있는 우리들에게 가출이 가진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가출 청소년들에 대한 생각은 경우에 이르면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에 대한 생각으로 폭이 넓어진다. 또 A를 만나게 되면서 생각의 깊이도 깊어진다. 성연보다 더 위험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A가 새벽에 아이들을 찾아온다.


갑작스러운 새벽 방문이 만들어낸 이야기에서 인수의 행동은 조금 의아스럽다. 도대체 왜? 인수 스스로 까닭을 설명해 주고 있지만 아직도 이해하기 힘들다. 한순간의 선택이 가출팸에 함께 있던 아이들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그런데 어른이 된 인수에게 자신처럼 가출한 청소년 이호가 등장한다. 가출 청소년의 길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어른 인수는 이호에게 어떤 길을 안내해 줄까? 자신의 경험담을 늘어놓으며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준비하라고 할까?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그저 바람이 있다면 이 이야기가 꼭 픽션이길, 허구이길 바란다. 아이들의 자유를 없애버린 교육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아이들에게 즐거운 학교생활과 친구들과의 시간을 돌려준다면 가출 문제와 자살문제는 조금씩 해결되리라 믿는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경수와 인수를 통해서 꼭 알아보길 바란다. 성연과 지민 같은 안타까운 아이들은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다.



"창비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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