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뢰성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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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뢰성黑牢城은 제12회 야마다 후타로 상을 시작으로 최초로 일본 미스터리 4대 랭킹 1위를 차지하였다. 거기에 제166회 나오키상 수상을 비롯해 전무후무前無後無한 9관왕을 달성한 작품이다. 《흑뢰성》은 데뷔 20주년을 맞은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의 필력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처음 접해본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의 멋진 스토리텔링에 푹 빠져드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일본의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많은 장군들이 등장하고, 또 많은 전투 장면이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역사 소설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역사에 남아 있지 않은 '공백'을 상상력으로 채워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적인 허구와 역사적인 사실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면서 이야기는 풍부해지고 등장인물들은 입체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 소설에 등장하면서 역사 속에도 등장하는 두 명의 장군들이 이 소설의 흐름을 책임지고 있다. 무라시게와 간베에. 오다 노부나가에게 반기를 들고 아리오카성城에 서 수성전에 들어간 무라시게에게 오다의 사자使者가 찾아오면서 소설은 시작한다. 그 사자가 무라시게와 함께 이 소설을 끌고 나가는 구로다 간베에이다. 보통 사자는 죽이거나 돌려보내는 게 관례다. 그런데 무라시게는 무사로서는 참 별난 이유로 간베에를 지하 감옥에 가둔다. 죽여달라는 간베에의 간청을 무시하고 관례를 무시하면서까지 감베에를 살려둔 까닭은 무엇일까?


p.29. 이리하여 간베에는 아리오카성에 갇혔다.

인과因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진하면 극락, 후퇴하면 지옥'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서장은 인因이 되고, 구로다 간베에가 남긴 교훈을 보여주는 종장이 과果가 된다. 미스터리한 이야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 놀랄 것이다. 물론 모든 이야기의 전개를 계획하고 풀어낸 인물을 알게 되면 더욱더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그렇게 풀어낸 까닭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때는 더는 놀라지도 않을 것이다. 정말 엄청난 스토리텔러를 만났다는 반가움만 남을 것이다.


오다 노부나가 군의 포위망이 조금씩 더 숨을 조여오고 있었지만 성내 분위기는 그리 어둡지 않았다. 아베 지넨의 기이한 죽음이 있기 전까지는. 11살 소년의 죽음의 원인과 살인범을 두고 많은 소문과 억측이 난무하기 시작하면서 성안은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더 이상의 균열을 막기 위해 무라시게는 지하 감옥으로 향한다. 무라시게는 왜 간베에를 찾았을까? 


지하 감옥에 갇힌 간베에는 왜 무라시게의 질문에 답을 주는 것일까? 그럴 거면 반군에 합류하는 게 좋지 않을까? 무라시게는 세 가지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간베에의 지혜를 빌린다. 역사 소설이 미스터리를 품게 되니 재미와 흥미는 '묻고 더블로 가'가 된다. 너무나 재미나서 5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을 밤새워 읽었다. 잠을 자지 못한 피곤보다는 인과 결을 보았다는 행복이 더 크게 다가섰다. 정말 '순삭'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역사 속 사실을 보면 간베에는 성이 함락될 때까지 지하 감옥에 갇혀있다가 구출된다고 한다. 그러고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지혜 주머니 역할을 했다고 한다. 거기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도와 막부시대를 여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왜 지하에 갇히게 된 것일까? 


그런데 간베에보다 더 흥미로운 인물이 무라시게이다. 아라키 가문 당주이고 한 성의 성주인 무라시게가 역사 기록에는 부하를 버리고 자신만의 목숨을 보존한 지질한 장수로,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모두를 두고 성을 버린 성주 무라시게에는 어떤 사정이 있었을까? 


수급(首級)을 베는 야만적인 행동이 보이고, '게시닌(解死人)'이라는 희생양 관습도 보인다. 좋은 역사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한 나라의 역사 속 어둠과 빛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일본 전국시대의 빛과 어둠을 잘 조화시켜서 다양한 빛을 보여주고 있어서 좋았다. 야만적인 상황이 이해 불가이지만 모르던 일본의 문화를 알게 해주는 의미 있는 소설이다. 《흑뢰성》이 괜스레 그 많은 상을 수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책을 열면 금세 알게 될 것이다. 아리오카성에서 오본창과 함께 긴장 속에 거닐고 있는 듯한 스릴은 작가가 주는 또 다른 선물인듯하다. 소설이 줄 수 있는 모든 선물을 주는 매력 넘치는 책이다.


 

"리드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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