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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인간 - 팬데믹에 대한 인문적 사유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문정 옮김 / 효형출판 / 2021년 6월
평점 :
코로나19 발생 초기 다수의 전염병 전문가들과 정부는 '마스크'착용이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며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고 곧 '거리 두기'와 함께 의무가 되었다. 공공장소에서의 '방역조치' 준수는 아무 거부감 없이 지켜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지금도 마스크는 외출 시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그래서 팬데믹 초기 마스크 착용을 반대하는 일부 국가의 국민들을 보며'왜 저러지' 싶었다. 하지만 어느 이탈리아 철학자의 글을 통해서 그들의 생각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p.48. 영원히 긴급상태인 사회는 자유 사회가 될 수 없다. 루이는 지금 소위 '안전의 명목'으로 자유를 희생하며, 두렵고 불안한 상태에 영원히 살도록 우리 스스로를 정죄한 사회에 살고 있다.
조르조 아감벤은 <얼굴 없는 인간>펜데믹에 대한 인문적 사유를 통해서 각국이 행하고 있는 마스크 착용과 거리 두기, 봉쇄정책과 영업제한 등의 '방역 조치'는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 초헌법적 행위라며 자신의 생각을 짧은 글 속에 촘촘하게 담고 있다. 생각도 못 했던 부분을 들려주고 있어서 너무나 큰 임팩트와 함께 다가온 흥미로운 책이다. 처음 만난 철학자의 글이 이렇게 친숙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노사상가의 필력이 고스란히 담긴 탓인듯하다. 철학 책을 좋아할 뿐 철학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저자의 친절 덕분에 정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p.137. 순수한 생물학적 존재로 축소된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며, 정부가 인간 외 사물을 지배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짧은 글들이 향하는 한 곳은 '인간의 자유'인 듯하다. 인간의 진정한 존재감은 '자유'를 바탕으로 존립하는데 팬데믹이라는 괴물이 소통의 자유를 가로막은 것이다. 그런데 팬데믹 상황을 세계 각국의 정권들이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전체주의를 우려하고 있다. '통제'를 위해서 '보건'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자본 민주주의는 지고 전체주의가 대세가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이 생물학적 존재로 축소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최소한의 의미가 생물학적 인간이 아닐까? 죽은 뒤에, 병들어 누운 뒤에 '자유'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정말 많은 생각을 끌어내는 책이다.
p.138. 언어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존재하는 개방성, 우리의 '얼굴'이다.
철학 책을 읽는 재미, 특히 서양의 철학자의 글을 만나는 재미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흥미로운 생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철학 책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은 평소 쓰지 않던 '생각 근육'을 엄청나게 사용하게 한다는 것이다. 마스크 착용과 거리 두기에 대한 다른 생각을, 판데믹을 대하는 다른 주장을 만나보고 싶다면 조르조 아감벤의 생각(『얼굴 없는 인간』, 『저항할 권리』)을 만나보길 바란다.
"효형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