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손탁 호텔에서
듀나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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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 전문 브랜드 퍼플레인의 세 번째 작품으로 소설가이자 영화 비평가 듀나의 미스터리 소설집<그 겨울, 손탁 호텔에서>를 만나보았다. 접해보지는 못했지만 SF 소설로 유명하다는 저자의 '하지만 저는 미스터리 작가인데요.'라는 작가의 말이 흥미를 더해주는 미스터리 단편소설집이다. 소설에 장르를 구별하는 것에 별생각이 없었는데 저자의 인터뷰를 접하고 다시 한번 이 책에 담긴 작품들을 떠올려보았다. SF, 판타지를 배제한 순수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 가지는 매력을 격하게 만나볼 수 있는 작품집이다.


상상력의 극대화를 끌어내던 판타지 자리는 추리가 대신한다. 화자가 범인인듯하지만 증거는 없고, 열정적으로 추리하지만 결과는 반전에 부딪히는 정말 흥미롭고 재미난 이야기들이다. 다른 장르의 소설들도 그렇지만 미스터리 소설이 가지는 매력 중 가장 큰 매력은 '반전'인 듯하다. 장소만 바꾸어도, 화자의 나이만 바꾸어도 이야기는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낸다. 


반전을 매력적으로 만든 일등공신은 '선입견'인듯하다. 범인은 남자일 것이라는, 또 공범은 생각하지도 못하는 선입견들이 미스터리를 푸는 과정을 방해한다. 이 작품집의 시작을 알리는 『성호 삼촌의 범죄』에서도 선입견이 만들어 놓은 덫에 걸린 형사가 등장한다. 단순하지만 풀기 어려운 밀실 살인사건을 풀어야 하는 방암식 형사.


 p.87. 그 '피'에 다른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건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든 뒤였어.


가볍게 뇌에 자극을 준 작품집은 두 번째 작품『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에서 연쇄살인 이야기를 다룬다. 짧은 이야기에 연쇄살인을 다루는 게 가능할까? 결론만 말하자면 가능했다. 기괴한 모습으로 죽은 피해자들의 연결 고리를 찾아가는 흥미로운 추리과정을 즐겨보길 바란다.


미스터리 소설집의 제목과 동일한 제목의 『그 겨울, 손탁 호텔에서』는 일기 형식으로 펼쳐진다. 이 작품집이 가진 매력 중에 하나가 다양한 형식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시점의 화자들이 등장해서 이야기의 재미를 더하는 건 또 다른 매력이다. 영화 촬영 현장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그리고 중요한 목격자가 된 화자. 그런데 화자의 어이없는 선입견이 엉뚱한 결과를 만들고 만다. 하지만 그 결과가 더 정의에 가깝게 느껴지는 건 무슨 까닭일까?


『돼지 먹이』에서는 스케일이 커진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미국에서 일본을 오가는 배경적인 스케일도, 조직 보스의 등장도 초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를 그리게 만든다. 그리고 그 그림처럼 커다란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그 큰 이야기의 시작은 더 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차별. 모든 것에 대한 차별. 


p.159. "더러웠어! 그냥 더러웠어!"


점점 더 흥미를 더해가는 작품집에는 앞으로 너무나 담담하게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부인(콩알이를 지켜라)도 등장하고 오래전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 속에서 그 사건의 용의자가 된 영화배우(누가 춘배를 죽였지?)도 등장한다. 앞에서 등장했던 방암식 형사(그건 너의 피였어)가 다시 등장하는 데 이번에도 활약은 미약하다. 그런데 자꾸 등장하는 걸 보면 언젠가 다른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햄릿을 재구성해 본 듯한 정말 짧은 이야기(햄릿 사건)를 끝으로 작품집은 페이지를 닫는다. 


여덟 개 작품 모두가 흥미롭고 재미나다. 책에서 소개하는 순서대로 읽어도 좋고 아무 작품이나 먼저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장편소설을 좋아한다. 시詩나 단편소설보다는 많은 부분을 풀어서 보여주고 있어서 편안하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편소설들을 모아놓았지만 단편소설의 난해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편안하고 재미나게 즐길 수 있는 흥미로운 미스터리 이야기들만 기다리고 있다. 추리소설이 가진 모든 매력을 담아놓은 미스터리 작품집이다. 엄청난 작가의 엄청난 작품들을 만나 정말 행복했다. 



"퍼플레인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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