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악마의 계약서는 만기 되지 않는다
리러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8월
평점 :
제1회 K- 스토리 공모전 대상 수상작<악마의 계약서는 만기 되지 않는다>는 주인집 손녀와 세입자의 로맨스 소설이다. 언젠가 어디선가 한 번쯤은 본듯한 올드 한 설정이다. 그런데 그 세입자가 저승에 근무하는 악마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다 쓰러져가는 집에 세입자가 새로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못 보던 이상한 사람에 대해 묻는 서주에게 할머니는 '지옥이랑 계약'을 맺었다고 말한다. 지옥이 리모델링 중이라서 죄인들을 가둘 곳이 모자라 이 집의 일부를 지옥의 악마가 쓰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악마가 새로운 세입자가 되었고 소설은 판타지 소설이 된다.
판타지 로맨스 소설의 달달함을 악마가 타주는 미숫가루로 맛볼 때쯤 할머니의 친아들 형섭이 동네에 나타나고 이야기는 그렇게 미스터리 스릴러가 된다. 스토리 공모전 대상임을 증명하듯 스토리가 너무나 풍부하다. 많은 이야기들로 산만할 수도 있는 소설의 흐름을 촘촘한 구성이 잡아주고 있다. 거기에 개성이 확실한 등장인물들이 소설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어 주고, 위트와 유머가 돋보이는 문장들이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때까지 책을 덮을 수 없게 만든다.
한숨을 쉬자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달콤한 걱정은 처음이었다.
무엇이 되었든 '시작'은 언제나 두근거리는 설렘과 적당한 긴장이 기분을 들뜨게 만들어 좋다. 그래서 서주와 악마의 썸을 지켜보면서 둘의 로맨스를 응원했는지도 모르겠다. 무척이나 달달한 사랑의 설렘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안 되겠다. 역시, 당신은 너무 달아요."
이제는 치매를 걱정해야 하는 할머니 옆에서 할머니를 지켜주는 서주를 통해서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 보게 된다. 돈이 필요할 때만 찾아오는 아들이 가족일까?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할머니 옆에서 늘 함께하는 서주가 가족일까? 방문을 열면 지옥과 연결되니 당연히 선과 악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이 변할 수 있을까? 아니 그 기준이 존재할까? 그렇게 수시로 변할 수 있는 선과 악을 진정한 선, 진정한 악이라 말할 수 있을까? 경계선에 선 선과 악을 만날 수 있는 의미 있는 소설이다.
악마가 등장하고 지옥에 떨어진 죄인들이 등장하는 저승과 서주를 챙겨주는 모카 언니와 승빈이 등장하는 이승이 연결되는 접점은 다 쓰러져가는 집이다. 흡사 폐가에 가까운 집이지만 서주에게는 '우리 집'이다. 우리 집에 함께 살게 된 서주와 악마의 로맨스는 이어질 수 있을까? 저승과 이승이라는 차원이 다른 갭을 채울 수 있을까? 할머니와 서주의 모습도, 악마와 서주의 모습도 우리 집을 채워주는 가족의 모습이다. 사랑의 모습이다.
'우리 집'에 함께 살게 된 지옥의 신입 악마는 서주에게 달콤하고 고소한 미숫가루를 건넨다. "출근하기 전에 당 채우고 나가기"라는 달달한 메모와 함께. 악마 중에도 제비가 있나? 어디서 수작을. 수준급의 매너로 무장한 신입 악마가 서주에게 한 눈을 팔기 시작한다. 그런데 묘한 삼각관계도 보인다. 악마와 인간의 로맨스도 흥미로운데 악마와 인간의 경쟁 구도는 이야기를 더욱 재미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악마와 임대차 계약을 맺는 순간 이 소설은 벌써 재미와 계약을 맺은 것이다.
"팩토리나인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