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무라세 다케시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p.303. "혹시라도 당신이 사고가 나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춰 있다면,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 더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그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더라도 슬프고 아프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영원히 떠나버린 자리는 아픔과 슬픔이 눌러앉는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했던 추억이 지워지지 않는 한 이별의 어두운 그림자는 걷히지 않는다. 하물며 예상치 못한 이별의 아픔과 슬픔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갑작스러운 이별의 슬픔과 아픔 속에서 한 걸음도 빠져나오지 못한 이들에게 이별을 준비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기회를 마다할 사람들이 있을까? 무라세 가케시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西由比ケ浜驛の神樣 >은 갑자기 찾아온 이별로 무너져버린 이들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한걸음 내디딜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해 주는 판타지 소설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기차 사고로 갑자기 잃은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는 판타지를 바탕으로 하지만 이야기는 너무나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다. 거기에 다양한 사회문제들도 담고 있어서 생각의 깊이와 폭을 더해주고 있다. 약혼자와의 마지막 만남을 위해 영혼들이 타고 있는 사고 전 기차에 오르는 여자의 애끓는 사연을 시작으로 각기 다른 네 명의 사연을 보여준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아들,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누나를 잃은 중학생 그리고 이 기차 사고의 피의자로 지목된 기관사의 아내. 각자의 사연은 일상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랑 이야기이다. 하지만 별안간 닥친 이별은 평범했던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조금씩 벌어져 관계가 소원해진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아들 유이치의 삶을 변화시킨다. 유이치는 치열한 경쟁에 지친 자신을 죽이고 새로운 삶을 선택한 것이다. 남편을 아빠라 부를 만큼 남편에게 의지하는 미사코는 사고 기차를 과속으로 몰았다는 기관사의 아내이다. 사고의 원인이 자신의 남편이라는 사실이 아내를 집 밖으로 나서질 못하게 한다. 그러다가 유령들이 타고 지나는 기차에 타서 남편을, 기관사를 몰래 지켜본다. 그러고는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려고 한다. 남편과 함께하려는 것이다. 마사코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네 명중에는 사고 기차에 탔었지만 살아남은 중학생 가즈유키가 있다. 짝사랑하던 고등학생 다카코 누나에게 그날 그 기차 안에서 고백했다. 그리고 사고가 났다. 하지만 자신은 생존했고 누나는 죽었다. 둘이 함께 있었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소년의 순수한 짝사랑을 응원하며 혹시나 하던 바람은 그대로 접어야 했다. 하지만 소년은 천사가 된 누나의 사랑만큼 성숙했고 또 그만큼 용감해졌다.

 

이 소설은 네 명의 각기 다른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하나의 이별 이야기로 연결되어 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별로 한 걸음도 못 나가던 이들은 살고 전 기차에 올라 사랑하는 이들과 마지막 만남을 갖는다. 죽음이 만들어낸 상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빛나는 삶을 찾아 나선다. 마지막 문장 "잘 다녀와요."라는 평범한 인사말로 끝을 맺는다. 지극히 평범한 이 인사말이 왜 이토록 가슴을 짓누르는 것일까? 마지막 기차역에서 영원한 이별이 갈라놓은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모모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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