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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택의 재검토 - 최상을 꿈꾸던 일은 어떻게 최악이 되었는가
말콤 글래드웰 지음, 이영래 옮김 / 김영사 / 2022년 4월
평점 :
p.128. 일련의 믿음에 많은 것을 투자할수록, 그러니까 그 신념을 위해 희생한 것이 많을수록 사람은 실수라고 말하는 증거에 강하게 저항한다.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몰두한다.
세계적인 지성 말콤 글래드웰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보았다. 저자는 많은 사회적인 문제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지혜로운 조언도 아끼지 않는 매력적인 저널리스트이다. 그래서인지 묘한 끌림이 있는 저자의 문장은 '간단 명료'하다. 화려하지 않은 담백한 표현으로 흥미와 재미를 전달하는 대단한 스토리텔러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번에 접한 <어떤 선택의 재검토> 또한 말콤 글래드웰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강한 '끌림'이 있는 책이다.
p.46. 그들의 모토는 "우리는 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진보한다 Proficimus more irretenti"였다. 항공단 전술학교의 리더들은 '폭격기 마피아'라고 불렸다.
원제 'THE BOMBER MAFIA'는 이 책의 주인공들을 뜻하는 말이다. '폭격기 마피아'는 제2차 세계대전의 끝을 만들어낸 미 육군항공대 소속의 '괴짜' 지휘관들을 가리킨다. 어떤 시대든 많이 아니 조금만 앞선 생각을 드러내도 그들에게는 괴짜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듯하다. 그들이 그랬다. 진보한 생각으로 미 공군 창설에 힘이 되었던 이들의 이야기이다. 전쟁이라는 가장 부조리한 큰 폭탄을 안고 비정한 결정을 해야 했던 이들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이다.
말콤 글래드웰의 책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논픽션이 픽션으로 읽힌다는 점같다. 실제 벌어졌던 1945년 '도쿄 대공습'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고 있는 논픽션이지만 너무나 강한 몰입감과 속도감이 마치 재미난 소설을 보고 있는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전쟁은 어떤 이유에서든 발생해서는 안 되는 끔찍한 죄악이다. 전쟁이 인간의 존엄성을 어디까지 파괴할 수 있는지는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이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 역사의 중심에서 그 역사를 만든 이들에 관한 것이어서 더욱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다.
많은 희생자를 낳는 전쟁을 빨리 종결시키기 위해 미국이 선택한 방법은 옳은 것이었을까? 도쿄 대공습으로 하룻밤에 10만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하다. 이 참담한 사건의 이면에는 폭격 마피아가 꿈꾸었던 '윤리적 전쟁'이 있다. 최소한의 희생, 민간인이 아닌 전쟁 관련 산업만의 파괴. 그러기 위해서는 정밀한 폭격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들은 '고고도 주간 정밀 폭격'을 선택한다. 정말 숭고한 의도에서 윤리적인 결정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은 엄청난 결과를 낳고 만다.
이 책에는 상반된 생각을 가진 두 명의 공군 지휘관이 등장한다. 전쟁을 빨리 종결시키기 위한 방법론의 차이가 너무나 확실한 두 지휘관 핸셀과 르메이는 도쿄 대공습을 감행한다. 핸셀은 '모든 폭격조준기'를 사용해서 주간 폭격을 시행한다. 윤리적인 의도와 양심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나카지마 공장에 단 1퍼센트의 피해를 내는데 그치는 완전히 실패였다. 하지만 핸셀의 뒤를 이어 부임한 르메이는 작전에 성공한다. 핸셀이 거절했던 네이팜(소이탄) 공격으로 도쿄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누구의 선택이 옳은 것이었을까? 이 책이 던지는 흥미로운 질문들 중 하나다. 올바른 선택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말콤 글래드웰이 던지는 가장 큰 질문이다.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이 언제든 우리의 오늘이 될 수 있기에 더욱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러시아는 민간의 희생은 최소한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외신이, 우크라이나가 전하는 사실은 전혀 다르다. 북한과 접하고 있는 한, 김정은이라는 과격한 자의 권력이 무너지지 않는 한 우리에게 전쟁은 남의 일이 아니다.
p.11. 나는 집착 없이는 진보도, 혁신도, 즐거움도, 아름다움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심리적인, 도덕적인 관점으로 전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의 조국이 한국이라서,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가 전쟁과 너무나 가까워서 전쟁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더 강하게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강한 끌림이 있는 엄청난 책이다.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