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엘레오노르가 옳았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반 밀렘 남매를, 그리고 어쩌면 나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유럽 문단의 매혹적인 작은 악마로 불리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본명은 프랑수아즈 쿠아레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등장인물인 사강을 필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소설에 철학이 담겨있어 소설이 무겁기만 하던 시절에 그저 권태로운 일상을 담은 짧은 이야기로 세상을 놀라게 하며 등장한 소녀 작가가 사강이다. 사강은 19세 때 전 세계 베스트셀러가 된 『슬픔이여 안녕』으로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데뷔했고, 이 작품으로 1954년 프랑스 문학비평가상을 수상한다. 천재 작가의 등장이었다.
하지만, 작가 사강의 삶은 꾸준하게 이어졌지만 사회인으로서의 사강의 삶은 '굴곡진 인생' 그 자체였다. 약물과 도박 등의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작가의 마지막은 궁핍했다고 한다. 2004년 그녀의 죽음을 자크 시라크 프랑스 전 대통령은 "프랑스는 가장 훌륭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작가 중 한 사람을 잃었다"라며 애도했다. 감수성 넘치는 글을 쓴 작가의 말로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사강을 처음 만난 건 그녀의 데뷔작 『슬픔이여 안녕』을 통해서이다. 이성과 감성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우리들 삶을 그리고 있어서 불안해하며 읽었었던 기억이 있다. 슬픔과 이별하며 작별 인사(아듀Adieu)를 하는 것인지 슬픔과의 만남에 인사(봉주르 Bonjour)를 건네는 것인지 아직도 궁금하다. 너무나 감성적인 흐름이 불안하기까지 했던 작가의 작품들을 다시 만나보았다. 냉정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인간의 사랑, 집착, 이별 그리고 고독을 그리는 작가 사강을 만나본다.
소담출판사에서 프랑수아즈 사강의 다섯 작품을 출판했다.『어떤 미소』, 『한 달 후, 일 년 후』, 『마음의 파수꾼』, 『마음의 푸른 상흔』, 『길모퉁이 카페』 장편 네 작품과 단편집 한 작품이다. 다섯 작품을 동시에 만나보는 행운으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감성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감성적인 작품을 많이 쓴 작가 사강이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지적이고 이성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구보다 자유와 인권, 차별 없는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작가이다. 이 다섯 작품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사강의 지성과 감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푸른 상흔>
이 작품은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무척이나 헛갈려하며 힘들게 읽었다. '역자 후기'를 읽고 조금 이해된 작품이다. 십 년 전 인물들을 다시 불러내는 것도 재미있을 텐데(p9).라는 글이 담긴 문단의 시작은 '이렇게 쓰고 싶다.'이다. 즉 이 작품은 세바스티앵과 엘레오노르 남매가 주인공인 소설과 사강이 주인공인 에세이가 함께 존재한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 너무나 파격적이다. 그래서 따라기기 조금은 어려웠지만 다 따라잡은 후의 즐거움에 비하면 그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 내용의 파격도 만만치 않다. 다양한 문화와 소수의 인권도 받아들여지고 있는 요즘과는 다른 시대를 살았고 그런 시대를 담아낸 사강의 이야기가 소설과 에세이를 통해서 중첩해서 들려온다. 모순된, 부조리한 삶을 대하는 방법이 사람마다 다르듯 이 책의 주인공들이 삶을 대하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두 남매가 보이는 삶의 모습도 흥미로웠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인물은 로베르였다. 인물 자체의 케릭터도 흥미로웠지만 그의 고독과 외로움을 보여주는 작가 사강의 표현력이 너무나 좋았다. 작가 사강의 생각을 알고 싶다면, 사강의 삶을 보고싶다면 이 작품에 담긴 사강의 에세이를 꼭 만나보길 바란다.
"소담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