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러시아 군인들은 우크라이나의 유부녀들에게 성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참혹한 소식이 계속해서 전해지고 있다. 어떻게 인간이 인간을 상대로 그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인간의 잔혹함은 전쟁 상황에서만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더 비극적인듯하다. 그 비극의 원인은 무엇일까? 인간의 잔혹함의 바탕이 되는 악惡은 어디서 시작되는 것일까?
p.47. 인간은 타인을 당신(Thou)이 아닌 그것(it)으로 경험함으로써 상대방을 대상화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지적 오류는 악이 행해질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옥스퍼드대학교 출판부 검토위원인 미국의 심리학자 존M.렉터는 악惡의 원인을 '대상화'에서 찾고 있다. 타인을 주체가 아닌 사물로 바라보고 사물처럼 대하는 심리적인 과정이 대상화이다. 대상화라는 단어의 뜻만으로도 상당히 거북하다. 아니 무척이나 무섭다. 사람을 사물로 본다는 게 어떤 것일까? 또 악의 시작인 대상화에 빠지지 않을 길은 무엇일까? <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 타인을 대상화하는 인간>에서 저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전쟁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건들을 바탕으로 '대상화'를 철학, 사회학, 종교학 등의 다양한 관점에서 촘촘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총 5부로 구성된 책은 1부와 2부에서는 대상화의 개념과 철학적인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이어서 제3부 인간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 대상화에 기여하는 기질적인 요인에서는 인간이 가지는 특성과 그 특성이 만들어내는 문제들을 언어, 자아, 나르시시즘 등을 통해서 자세하게 들려주고 있다. 제4부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대상화에 기여하는 상황적 요인에서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처하게 되는 환경이나 상황이 대상화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다양한 심리학적 실험과 역사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악惡이 어떻게 생성되고 발현되는지에 대한 깊은 사유를 접할 수 있어서 정말 흥미롭고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이제 저자는 대상화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을 제5부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길 - 플라톤의 동굴 출구로 이어지는 길에서 알려준다.그런데 그 길이 '깨달음'의 길이라는 것이 문제다. 깨달음의 길을 알려주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의 종교적인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종교적인 접근을 통해서 인간의 대상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철학도 어려운데 이제 종교가 등판한 것이다. 물론 비종교적인 길도 간략하게 소개한다. 그런데 그 방법이 마음챙김이나 요가와 같은 종교적인 명상법이라 이 또한 종교의 굴레를 벗어나지는 못한듯하다.

어렵고 난해한 깊이 있는 이야기에 끝에는 뜻밖의 흥미롭고 재미난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책의 마지막에는 재미난 '부록'이 기다리고 있다. 자기애를 검사하는 가장 널리 알려진 자기애성 성격 검사 (NPI:Narcissistic Personality Inventory)를 해볼 수 있는 재미난 경험과 검사 결과에 놀라는 즐거움을 꼭 만나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