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언덕 - 욕망이라는 이름의 경계선
장혜영 지음 / 예서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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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인문, 교양, 세계사 작가인 장혜영의 장편소설<유리 언덕>을 만나보았다. 인간의 욕망과 사회적인 도덕이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요동치는 인간의 심리 변화를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는 소설이다.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스릴러나 미스터리는 아니지만 도덕과 욕망의 계속된 충돌 속에서 선택적 반전이 이어진다. 

   도덕과 욕망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동안 한태주의 사랑은 커져만 간다. 하지만 그 커다란 사랑이 욕망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욕망 덩어리였던 한태주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아이러니하다. 진정한 사랑의 힘이 원초적인 욕망을 누른 것일까?

 

   한태주는 현대문학을 강의하는 시간강사이다. 그리고 자신의 강의를 듣던 혜진을 통해서 사촌언니를 만나게 된다. 한태주의 삶을 바꾸어 놓은 운명적인 사랑이 바로 그녀 서다요이다. 작가는 한태주의 강의를 통해서 '유리 언덕'의 의미를 설명한다.

 

p.10. "…하지만 현실은 항상 욕망의 일탈을 통제하기 위해 일종의 경계를 설치하는데 나는 이 상징적인 장치에 '유리 언덕'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개인적인 욕망과 사회적인 도덕이 경합을 벌이는 심리적인 상황이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한태주의 도덕성은 한 번도 욕망과 다툰 적이 없는 듯해서 의아하다. 방학에 내려간 외할머님 댁 마을에서 동네 누나 고정애와 들에서 열정적인 사랑을 나눈다. 그러고는 서울로 올라와 완전히 잊고 산다. 도덕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고 평범한 삶과도 거리가 멀다. 그저 욕망의 늪에 빠진 삶이 보이는 듯하다.

    중고등학생 때라면 사춘기 소년의 충동적인 행동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한태주가 대학생 때 일이다. 거기에 석사과정 때부터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호텔에서 밀애를 즐기는 강바람도 있다. 서로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육체적 쾌락만을 즐긴다. 서로의 본명도 직업도 모른 체. 정말 도덕과는 거리가 아주 먼 인물이다.

    그런데 갑자기 서다요를 만나더니 도덕군자처럼 군다. 한 여인은 낙태했고 다른 한 여인은 태주의 아이를 갖기를 원하며 서다요 와의 만남 중에 마지막이라는 핑계로 몸을 섞는다. 유리 언덕이라는 뜻이 도덕과 욕망의 경계선이라면 주인공 한태주는 단 한 번도 도덕 쪽으로 발길을 준 적이 없는 듯하다. 그러다가 서다요 와의 만남으로 조금씩 변화해가고 있는 것 같다. 도덕 쪽으로 발길 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혀 도덕적인 삶을 살지 않았던 인물이 도덕적인 인물로 변화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나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은 기성세대의 비이성적, 비논리적인 행동들이다. 참 어이없는 어른들이 많이도 등장한다. 이 소설의 갈등은 이들이 맡고 있는듯하다. 자신의 회사의 부도를 막기 위해 납품권을 대가로 딸을 자폐아와 약혼시킨 아버지, 임신했다며 결혼하겠다는 딸에게 남편감이 아파트를 살 때까지는 승낙할 수 없다며 낙태를 종용하는 아버지, 의붓딸을 성폭행하고도 반성은커녕 '아버지'라는 호칭을 강요하는 아버지까지 진짜 '쓰레기'들의 대잔치 같다. 

    그런데 그중 압권은 성폭행 사실을 알고도 젊은 남편 편을 든 엄마다. 무엇이 이들의 도덕적 칼날을 무디게 만들었을까? 기성세대와 젊은 학생들의 사이에 위치한 연령대의 한태주가 도덕과 욕망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은 어쩌면 비도덕적인 기성세대에 합류할지 도덕적인 젊은 세대로 살아갈지 선택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도덕과 욕망,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이 소설에서 준비한 선택의 순간을 꼭 만나보길 바란다.

 

"예서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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