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나기라 유 지음, 김선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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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작가 제임스 힐튼이『잃어버린 지평선』이라는 소설에서 만들어낸 이상향 샹그릴라를 일본 서점대상 수상 작가 나기라 유의 작품을 통해서 만나본다. 소행성의 접근으로 한 달 후 멸망이라는 극약처방을 받은 지구에서 샹그릴라를 찾을 수 있을까? 아니 멸망, 죽음에 비하면 지금 현재는 어떤 비극적인 상황이라도 샹그릴라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구 멸망이 가져온 디스토피아 속에서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을까? 신에게 묻고, 자신에게도 묻고 있다. 

p.369. 당신, 이러는 이유가 뭐야? 

p.371. 산다는 건 대체 뭘까?

  지구 멸망과 함께 시한부 판정을 받은 우리들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괴물처럼 변해 서로가 서로를 약탈하는 '폭력'의 악순환이 시작된다면 그곳이 샹그릴라라 할 수 있을까? 죽음, 가족사랑, 폭력 그리고 자존감에 대한 깊이 있는 만남을 가져다주는 소설이다. 폭력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고 자존감과 사랑을 서서히 회복해 갈 때쯤 죽음이 찾아온다면 어떤 기분일까?

p.286. 신이 창조한 세상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꿈이 신이 망가뜨리려는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말았다. 신이라고 했나, 당신 정말 모순덩어리야.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びののシャングリラ>는 네 명의 화자가 자신의 일상을, 삶을 반추하는 네 가지 이야기가 담겨있다. 재미난 점은 그 네 이야기는 서로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두 고등학생의 순수한 사랑은 폭력에 찌들었던 중년의 사랑으로 이어지고 다시 가족이라는 더 큰 사랑으로 이어진다. 가족을 넘어서 누군가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해주는 이야기이다.

  지구 멸망과 함께 다시 찾은 가족 또 사랑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이 소설에서 자꾸만 눈에 띄는 더 큰 흐름은 폭력인듯하다. 잔인한 육체적 폭력부터 온라인상에서 행해지는 심리적인 폭력까지, 왕따에서 가정폭력까지 인간이 가진 심각한 폭력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첫 문장에 살인이 등장한다.

p.9. 에나 유키,열일곱 살. 같은 반 아이를 죽였다.

p.289. 야마다 미치코,스물아홉 살. 애인을 죽였다.

  지구 멸망이 한 달 남았다면 무엇을 하며 보내야 할까? 이야기는 고등학생 에나가 동급생 후지모리의 도쿄행에 보디가드를 자처하면서 시작된다. 지구 멸망이 코앞인데 홀어머니를 두고 왕따인 녀석이 짝사랑 소녀의 도쿄행에 몰래 뒤따르는 모습도 못마땅한데 소녀가 도쿄에 가는 목적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라니 불만이 극에 달한다. 하지만 도쿄에 다가갈수록 소녀를 응원하게 된다.

  에나가 목숨을 걸고 지키는 순수한 사랑은 세 번째 이야기 엘도라도에서 에나의 어머니 시즈카가 아들 에나를 지키기 위해 보여주는 놀라운 모성애로 이어진다. 두 번째 이야기 퍼펙트 월드에 등장하는 야쿠자의 일원도 되지 못한 양아치 신조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인간이 가진 잔인한 폭력성으로 흐른다. 그러고는 네 명의 구성원은 어느 한곳으로 떠난다. 그곳이 지상낙원일까? 

샹그릴라, 퍼펙트 월드, 엘도라도. 

  지구 멸망의 날이 정해진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아마도 이 책에 그려진 다양한 모습의 인간 군상 속에 우리의 모습도 있을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만족하는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가족의 소중함도,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구 멸망의 날에 함께 할 마지막 네 번째 이야기 마지막 순간의 화자는 누구일지 꼭 만나보길 바란다.

"한스미디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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