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 크리크
앤지 김 지음, 이동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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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에드거상 등 많은 상을 수상하고 아마존을 비롯한 많은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던 작품<미라클 크리크>를 만나보았다. 이 장편소설은 미국에 이민 온 한국인 가족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 소설의 주요 흐름은 '법정'에서 펼쳐지는 재판 과정이다. 이 소설의 저자 앤지 김은 열한 살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법정 변호사로 일했다. 그리고 2019년 <미라클 그리크>로 소설가로 데뷔했다. 저자의 삶이 소설의 바탕이 된 까닭일까? 사실적인 이야기 전개와 디테일한 심리 묘사가 압권이다. 왜 이 소설이 많은 상을 수상하고 전 세계 20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는지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p.505.이 비극의가장 극적이면서 얄궂은 부분이 바로 거기에 잇었다.

그날 일어난 일 전부가 그저 좋은 사람의 단 한번의 실수가 초래한 예기치 못한 결과라는 것.

남편이 내게 거짓말을 시켰다.(p.15) 이 소설의 첫 문장이 보여주듯이 이 작품은 '거짓'이 만들어낸 '침묵'이 가져온 파괴를 담고 있다. 버지니아의 작은 마을 미라클 크리크에 사는 한국 이민자 가족이 주인공이다. 그들을 둘러싼 이들의 가족 간 믿음이 파괴되고, 이웃 간의 믿음도 상실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박 유, 영 유 그리고 그들의 딸 메리. 그들은 이곳에서 '미라클 서브마린'이라는 고압 산소 치료 시설을 운영한다. 고압산소요법은 고압의 산소를 이용해 자폐, 뇌성마비, 불임 등을 치료하는 일종의 대체의학이다. 헛간에 차려진 시설이었지만 이곳을 찾는 환자가 늘어나던 어느 날 큰 사고가 발생한다. 두 명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폭발 사고가 일어난다.

작은 거짓으로만 알았던 폭발의 진실은 정말 엄청난 반전을 품은 채 법정에 선다. 그렇게 소설은 나흘간의 법정의 재판을 챕터로 사용하고 있다. 나흘간의 재판에서 점점 진실과 멀어져 가는 이도 있고, 멀어진 진실 뒤에 숨으려는 이도 있다. 진실에 침묵하고 거짓을 말하는 이도 있다. 그렇게 이야기는 반전이라는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며 영 유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 열여덟 살이 된 딸 메리의 육체적, 정신적 상처가 안쓰럽고 휠체어에 앉은 박의 처지가 걱정인 '엄마' 영의 이야기가 다른 어떤 이의 이야기보다 더 깊게 와닿은 까닭은 무엇일까? 저자가 마지막에 언급하고 있는 우리 민족의 Han의 정서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일까?

p.509. 그 꽃밭을 바라보며 영은 마음속 절망의 자리를 대체하는 무거우면서도 가벼운 무언가를 느꼈다. 그것은 'Han'이었다. 그것에는 영어로 된 동의어도, 번역할 수 있는 말도 없었다. 그것은 사무치는 슬픔과 회한이었다. 영혼 깊이 스며든 비탄과 그리움이었다. 동시에 그것에는 용수철 같은 회복력과 희망이 있었다.

이 시설을 찾는 이들은 아픈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선택한 엄마들이다. 그런 엄마들의 이야기여서 영의 이야기가 더욱 흥미로웠나 보다. 그날 사고의 진실로 조금씩 다가갈수록 사고는 방화가 되어버린다. 도대체 어떤 인간이 산소 튜브를 연결한 아이들이 있는데 산소탱크에 연결된 줄에 불을 붙인단 말인가? 방화라면 살인이 된다. 그러고는 한 엄마가 방화용의자가 된다. 하지만 그녀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거짓 뒤에서 침묵한다. 살인과 방화라는 칙칙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야기는 따뜻하고 감동적이다.

틀림없이 재판 1일차의 기록부터 흥미를 끄집어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2일차부터는 더욱 바쁘게 돌아가는 재판 모습에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따라가는 것이 벅찰지도 모른다. 바쁘게 영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한 가족의 삶을 변화시킨 진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진실에 접근해가는 과정이 이 소설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자폐아를 위해 희생하는 엄마라는 소수 그리고 동양인 이민자라는 소수가 보여주는 섬세한 심리 변화는 스토리에 긴장감을 더해준다. 미라클 서브마린 폭발 사고의 진실을 만나고 싶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만남이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거짓과 진실이 만들어내는 '반전의 반전'이 주는 치명적인 재미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동네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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