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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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편소설아킬레우스의 노래를 통해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가 된 매들린 밀러의 신화소설 <키르케>를 만나보았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한 마녀로 서양 문학의 첫 마녀라는 키르케가 주인공이다.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남성들이다. 제우스를 비롯한 신들도, 헤라클레스나 아킬레우스도 남성이다. 또 그리스 신화에서의 주인공은 제우스 주위의 높은 지위의 신들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 키르케는 하급 여신 님프이다. 하급 신 님프이지만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딸이다. 티탄 신족으로 왕궁에서 태어나고 자란다. 그런 키르케가 왕궁이 아닌 외딴섬에서 홀로 외롭게 살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p.9. 맨 처음 태어났을 때 나에게는 걸맞은 이름이 없었다.

이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첫 문장이 보여주고 있듯이 키르케의 존재는 미약하기 그지없다. 님프 중에서도 영향력 제로인 존재다. 그런 님프 키르케가 자신을 둘러싼 그리스 신화를 들려준다. 여성 작가가 여성 주인공을 통해서 들려주는 그리스 신화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선다. 접해본 이야기가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서는 신기한 경험을 선물하고 있다. 특히 오디세우스의 아들을 낳은 키르케가 직접 오디세우스에 대해 들려준다. 물론 오디세우스의 부인 페넬로페도 남편을 평가한다. 두 여인의 만남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까? 현재였다면 이 둘의 만남은 막장 드라마로 그려졌을 것 같은데.

 

님프 키르케가 마녀가 된 까닭은 무엇일까? 질투와 배신이 아니었다면 키르케는 지금까지도 티탄 신족의 왕궁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에 눈이 먼 님프 키르케는 인간 글라우코스를 신으로 만들어준다. 하지만 이 인간이 배신을 한다. 그렇게 키르케는 자신 속에 숨어있던 마녀의 능력을 끌어내게 된다. 여기서부터 이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남성들은 '돼지'가 된다. 그런데 그 자격마저도 의심받게 된다.

p.253. 사실 남자들은 돼지로서 자격미달이었다.

이 소설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남성들은 진짜 '돼지보다 못하다' 그 시작은 키르케의 아버지 헬리오스이다. 제우스와 딸을 두고 협상하고 그 결과 키르케는 외딴섬에 유폐 된다. 그렇게 님프 키르케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외딴섬 아이아이에의 마녀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그 삶이 키르케에게 자신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고 자신의 존재를 돌아보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p.108. 나는 숲속으로 들어갔고 이렇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그곳에서 오디세우스도 만나고 모성애도 만나게 된다. 제우스의 힘에 딸 키르케를 포기한 아버지 헬리오스와는 다르게 아들 텔레고노스를 지키기 위해 여신 아테나와 맞선다. 하급 신 님프로서 전쟁의 신 아테나와 맞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키르케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 키르케는 용감하게 맞선다. 그렇게 죽음을 무릅쓰고 지킨 아들 텔레고노스가 자신을 떠날 때 다시 한번 마녀 키르케는 엄마의 사랑을 보여준다. 자신의 행복보다 자식의 행복을 먼저 생각한 것이다.

 

멋진 마녀 키르케는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된다. 그리고 자신의 과오를 정리하기 위해 아들이 만든 배에 오른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으로 많은 인간들이 죽게 되자 키르케는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바다 괴물 스킬라를 만나러 간다. 그런데 키르케의 옆에는 의외의 인물이 함께 한다. 그 위험한 길을 함께 하겠다고 나선 인물은 누구일까? 키르케가 마지막까지 함께하고 싶어 한 그는 누구일까?

p.485. 나는 후회와 세월이 새겨진 거석처럼 너무 오랫동안 칙칙하고 근엄하게 지냈다. 하지만 그건 남들이 나를 억지로 끼워맞춘 틀에 불과했다. 이제 그 안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었다.

힘으로 세상을 살려고 하는 명예욕에 눈먼 남성들이 멋지게 그려지는 많은 신화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그리스 신화를 만나고 있는 데 전혀 다른 느낌을 받게 되는 특별한 신화 소설이다. 키르케의 사랑이 만들어내는 신화는 전쟁과 싸움이 아니라 이해와 용서의 이야기이다. 자신을 떠나는 아들의 꿈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혹독한 삶을 준 신들을 용서한다. 아마도 자신의 삶을, 자신의 존재를 찾은 키르케이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키르케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마지막 문장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p.500. 나는 찰랑거리는 사발을 입술에 대고 마신다.


"이봄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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