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로드
조너선 프랜즌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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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프랜즌이라는 미국 작가를 장편소설<크로스로드>를 통해서 만나보았다. 첫 만남의 설렘은 묵직한 벽돌책 부피에 저만치 물러선다. 하지만 책 표지 도안의 의미를 찾아보고 싶다는 욕심이 다시 설렘을 부른다. 책날개에 소개된 작가의 약력을 읽으면서 그 설렘은 살포시 어깨에 자리 잡는다. 2011년 <타임>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했던 작가의 신작 <크로스로드>는 전체 3부작인 <모든 신화의 열쇠>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라고 한다. 이 작품을 만나게 된다면 다음 작품들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될 것이다.

몸이 아플 때, 사람은 낯선 사람의 손길에 몸을 맡긴다. 하지만 가난으로 아플때는 주변 환경을 낯선 사람에게 맡긴다.

시리즈의 시작이라는 중대한 사명을 맡은 <크로스로드>는 그 사명을 다할 듯하다. 두꺼운 벽돌책이라는 느낌은 소설을 읽기 전 첫인상까지다. '첫인상이 중요하다'라고들 하지만 이 작품의 경우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에 해당한다. 일단 손에 잡고 눈에 넣으면 순식간에 고등학생이던 베키의 아이와 만나게 될 것이다. 작가의 섬세한 심리 표현으로 엄청난 속도를 내서 읽을 수는 없지만 등장하는 인물들마다 보여주는 입체적인 캐릭터가 다음 페이지를 부른다. 책의 부피만큼이나 작품 속에 담긴 메시지는 많다. 차고 넘친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이 전혀 얽히지 않고 조화를 이룬다. 신묘하다.

소설은 한 작은 마을의 교회에 소속된 부목사 '러스 가족'이 보여주는 1970년대 미국의 이야기이다. 러스 목사는 아내와 4명의 자녀를 둔 평범한 가장이다. 하지만 직업이 목사이니 평범한 중년 남성을 대표하면 안 되는데 이 목사님 중년을 대표하러 나서신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남편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젊은 미망인 프랜시스를 품고 싶다는 중년 남성의 욕망이 종교인으로서, 한 여성의 남편으로서의 도덕심과 정면충돌하려고 교차로(크로스로드)에 진입한다. 러스는 신앙과 인간 본성, 욕정과 도덕 그리고 세대 간의 갈등 등 정말 다양한 심리적 갈림길에 처하게 된다.

갈림길에서 러스는 어떤 길을 선택하게 될까? 목사로서 가장으로서 남성으로서 신앙과 도덕 그리고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선택을 하기를 바라며 알 수 없는 긴장을 하게 된다. 등장인물 러스와 비슷한 연령이어서일까? 종교적인 색채는 그리 강하지 않다. 다만 당시 종교적인 문제들이 인종 문제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이 이 소설도 자연스럽게 인종 문제로 다가서게 하는 듯하다. 미국의 1970년대에 하면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베트남 전쟁과 히피 문화일 것이다. 러스의 큰 아들 클렘은 베트남전에 가겠다고 대학을 그만둔다. 셋째 페리는 대마초를 시작으로 약물에 중독된다. 살짝 보기만 해도 아찔한 아이들이다. 그런데 목사에게는 그런 아이가 둘 더 있다. 베키저드슨.

신을 의례나 의식이 아닌 인간관계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제목처럼 인생이라는 큰 흐름에서 만나게 되는 갈림길, 교차로에서의 '선택'의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소설 속에서 '크로스로드'는 러스가 교회 내에 만든 청소년부 모임이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로스 목사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이야기 초반 궁금증의 원천은 로스가 당한 3년 전 망신이다. 크로스로드를, 청소년부 아이들을 피해 다닐 만큼 커다란 망신은 무엇이었을까? 다음 궁금증은 도덕적인 삶을 설교하는 목사의 외도를 보게 될까였다.

세대갈등, 청소년 문제, 인종차별, 약물중독, 전쟁, 외도 등의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가장 아프게 남는 캐릭터는 로스의 아내 매리언이었다. 그녀의 삶을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완성될 듯하다. 그녀가 슬픔을 대하는 모습은 또 다른 아픔과 슬픔으로 다가온다. 개인의 역사가 모여 인류의 역사가 된다. 미국의 역사를 보여주는 개인과 가정 그리고 지역 사회의 역사를 보여주는 책이다. 세대 간의 갈등은 개인을 넘어 가족과 지역 사회로 확장되고 그 문제는 개인의 망가진 인생 문제로 다시 귀결된다. 무척이나 겁먹고 시작했던 벽돌책 읽기가 너무나 편안하고 쉽게 마무리 되었다. 벽돌책이지만 깨기 쉬운 소프트한 벽돌책 <크로스로드>를 통해서 종교적, 도덕적 교차로에 서 보길 바란다.

 

"은행나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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