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 (양장) 소설Y
천선란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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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창비소설 Y 대본집 두 번째 작품을 만나보았다. 흥미롭고 재미난 영 어덜트 소설을 대본이라는 특별한 형식에 담고 있어서 첫만남부터 신선하다. 청소년부터 어른들까지 폭넓은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영 어덜트 소설은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들이 주는 감동이나 재미와는 다른 감동과 재미를 선물한다. 순수한 청소년들의 눈으로 바라본 부조리한 세상에 어른들은 생각하지도 못할 용기로 맞서는 이야기들이다.

천 개의 파랑으로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천선란 작가의 <나인>을 담은 대본집 표지에는 이야기의 큰 흐름을 알려주는 문장이 있다.

"어느 날, 식물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동물들과 대화하고 여자의 마음을 읽는 등의 설정으로 만든 이야기들은 많이 만나보았다. 물론 그중에는 식물들과 대화하는 설정도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 속 주인공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지구에서 태어난 인간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 '나인'은 지구에서 태어난 외계인이다. 지구에서 태어난 외계인이라는 독특한 설정이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든다.

열일곱 살 소녀 나인은 어느 날인가부터 이상한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된 나인은 동시에 실종된 선배의 진실을 파해치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우정을 알게 되고, 삶의 의미도 생각하게 된다. 소설 속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몇 개의 소설로 나누어도 좋을 만큼 스토리가 풍부하다. 많은 이야기들이 전혀 혼란스럽지 않게 유기적으로 맞물려 조화를 이루며 외계인 소녀 나인의 삶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 하고 있다. 정말 엄청난 이야기꾼을 만났다. 가볍고 유쾌하게 시작한 리겔리 행성의 누브족 나인의 이야기는 거대한 스토리로 이어진다.

 

고등학생인 나인에게는 베스트 프렌드 두명이 있다. 여기에 이 소설의 특별함이 또 보인다. 고향 행성의 오염으로 지구로 이주한 누브족의 자손인 나인의 내일은 불확실함 그 자체이다. 당장 오늘도 불안하니 내일은 더 할 것이다. 특히 열일곱 살이 되어서야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소녀에게는 오늘도, 내일도 불안의 연속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를 알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자신을 믿어주는 친구들이 있다. 그리고 믿음을 보여주는 친구들의 이름이 '현재''미래'이다. 그래서 아마도 나인의 오늘과 내일은 믿음으로 가득 차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

이 소설에는 다른 모습의 우정도 등장한다. 2년 전 실종된 원우와 도현은 나인과 친구들처럼 베스트 프렌드였다. 하지만 원우가 외계인을 보았다는 말을 하게 되고 친구의 말을 믿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 편에 도현이 서게 되면서 둘의 우정은 비극으로 치닫게 된다. 어린 원우는 진짜 외계인을 보았다. 엄마가 보고 싶을 때면 찾아가던 숲속 나무가 죽어 슬퍼하던 어린 원우에게 땅을 파랗게 빛나게 하며 나무를 살려준 외계인이 있었던 것이다. 식물과 대화하며 식물에게 에너지를 줄 수 있는 나인과 같은 누브족을 만난 것이다. 어쩌면 그 만남이 없었다면 원우에게 불행도 닥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이 이야기가 가진 또 다른 특별함이 있다. 누구일까? 나인이 알고 있는 누브족일까?

 

환경 문제로 시작된 이야기는 사회 문제로 확장되어 풍부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미래와 현재가 조금씩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는 지구인으로 살다가 이제 막 외계인이 되어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나인의 모습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나인이 정체성에 혼란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친구들의 믿음인듯하다.

"무조건 믿어 준다고 해서 고마워."(p.476)

모든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일 것이다. 누군가의 말을 의심부터 해야 하는 지구인들의 모습을 외계인 나인이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표지에 있는 식물들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는 문장은 이 이야기의 시작만을 말해주는 아주 미미한 것이다. 식물들의 목소리를 듣고 무시해도 전혀 지장 없는 사건에 뛰어들어 진실을 찾아가는 나인과 친구들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넓고 깊었다. 재미와 감동을 적절하게 버무려서 소설이 가진 최상의 맛을 맛보게 해준 작품이다.

"창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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