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 - 대청 외교와 『열하일기』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 서가명강 시리즈 16
구범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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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서울대 교수진의 유익하고 흥미로운 강의를 엄선하여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양과 삶에 품격을 더하는 지식을 제공하는 서가명강(울대 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열여섯 번째 이야기를 만나보았다. 중국 근세사를 전공한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 구범진이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이다.

 

청나라와 조선의 외교를 다루고 있는 <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주제를 저자는 '들어가는 글'에서 밝히고 있다.

"『열하일기』속의 '열하 이야기'가 사실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는 나의 발견과 1780년을 분수령으로 조선과 청의 관계가 크게 달라졌다는 나의 핵심 주장을 독자와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다."p.10.


조선시대 북학파를 대표하는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를 읽어 본 이들은 많지 않겠지만 그 책과 저자는 모르는 이들이 드물 것 같다. 그런 열하일기가 '사실'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는 놀라운 주장의 근거는 무엇일까? 매년 사신을 보내 조공을 주고받던 조선과 청의 상황이 변화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변화의 시점을 콕 집어 1780년이라고 제시하는 까닭은 또 무엇일까? 무척이나 흥미로운 두 가지 주제는 이 책을 읽는 충분한 재미를 준다. 그런데 저자는 두 가지 주장에 이르는 동안 정말 많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서 재미와 흥미를 배가시켜준다.


영조는 죽을 때까지 청은 곧 무너질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조는 달랐다. 청과의 원만한 관계를 원했고 그런 바람에서 1780년이라는 시점이 등장한다. 정조 때 사신 일행의 부사 윤급은 일기에 "날을 보내기가 어렵다."(p.82.)라고 쓸 만큼 조선의 사신들은 청의 홀대를 받았다. 정식 행사라고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1780년 이후 사신들은 청의 황제가 주최하는 행사에 초대받으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게 된다. 왜 갑자기 홀대에서 환대로 바뀌게 된 것일까? 자세한 내용은 책을 통해 만나보길 바란다.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힌트라면 1780년 8월은 청의 황제 건륭제의 칠순이었다.


조선의 사신들은 일반적으로 청의 수도 베이징에 머문다. 그럼 사신들은, 박지원은 어떻게 만리장성 밖의 열하를 다녀올 수 있었을까? 그곳에는 청의 황제들이 여름을 보내던 '피서산장'이 있다. 사신은 일반적으로 연초에 도착하는데 이들은 왜 한여름에 베이징에 갔을까? 열하에 있는 황제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청나라 황제의 정치적인 의도를 엿볼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 이야기도 흥미로우니 꼭 만나보길 바란다.


열하의 피서산장에서 칠순 진하 특사 일행은 특별한 만남을 갖게 된다. 티베트 불교에서 달라이 라마에 버금가는 종교적 권위를 지니는 전생활불轉生活佛 판첸 라마를 황제의 권유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판첸 라마로부터 불상을 하나 받게 되는 데 이 선물이 『열하일기』의 기록을 변질시켰다는 주장의 단초가 된다.

 

연암은 8촌 형 박명원의 덕으로 사신 일행이 된 하급 수행원이었다. 그러니 황제의 축하연에 참석할 수도 없었고 박명원과는 다른 행적을 보인다. 그런데 형 박명원이 불상을 받았고 황제가 준 것이라는 오판을 한 것이다. '봉불지사'라는 오명을 쓴 형을 위해 아우 박지원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박지원의 선택을 떠나서 '주자학'이라는 틀에 갇힌 경직된 조선 사회의 어둠을 또 한 번 목도하게 되어 씁쓸했다. 누가 주었든 복을 기원하는 선물을 굳이 마다할 필요가 있었을까? 신념은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잘못된 신념은 나와 다른 신념을 가진 이들을 거부하게 하고 결국 사회를 병들게 만드는 것 같다.

 

『열하일기』는 우리에게뿐만 아니라 동북아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소중한 사료라고 한다. 열하에서 있었던 청 황제와 판첸 라마와의 만남을 제3자의 시각으로 기술했다는 점이 높게 평가받는다고 한다. 그런 『열하일기』에 담긴 조선과 청의 이야기를 당시 동북아 정세와 함께 쉽게 풀어내 재미나게 들려주고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준 매력적인 책이다.

"21세기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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