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어가 된 조선 유학자, 윤휴 - 왕과 사대부, 그리고 사관마저 지우려 했던 조선 최초의 자유로운 사상가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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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84. "천하의 이치를 어찌 주자 홀로 안다는 말이냐!"

민족·민중 주체 역사관으로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덕일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보았다. 서인과 남인으로 나누어 다투던 조선 후기 유학자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금기어가 된 조선 유학자, 윤휴>이다. 조선 후기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당쟁'일 것 같다. 그 당쟁의 중심에 섰던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조선이 왜 일본에 침략을 당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비슷한 시기 일본 지식인들은 서양의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받아 들이려 했다. 하지만 우리 유학자들은 주자학에 빠져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고 있었다.

외척의 세도정치도 결국 그 뿌리는 당파에 있다. 그런 당파의 수장하면 송시열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윤휴는 누구일까? 어쩌면 만나보았지만 기억 못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의 역사를 담당했던 노론 사관들에게 '윤휴'라는 인물은 언급하지 말아야 할 인물이었다. 왜 서인들은 윤휴를 싫어했을까? 아니 같은 남인들은 또 왜 윤휴를 꺼려 했을까? 기득권 세력이 개혁을 꺼려 하는 것은 오늘이나 그때나 같은가 보다. 권리는 누리고 의무는  나 몰라라 하는 사대부들의 계급 이기주의는 요즘 우리 사회 지도층들의 단상을 보는 것 같다. 역시 역사는 순환하는 것일까? 그것도 나쁜 것들로만.

 

p.109. 나라보다 당이 중시되는 시대.

군부보다 당수가 중시되는 시대.

왕보다 스승이 중시되는 시대.

옳고 그름보다 유불리가 중시되는 시대.

윤휴는 이런 시대를 개탄했다.

 

 

 

 

 

윤휴는 사대부들에게도 군역을 부과하자 했고, 신분제도의 완화 등 사회 전반에 대한 개혁을 통해 백성들이 잘 사는 나라를 꿈꾸었다. 그러니 주자학에 빠져 입으로만 '북벌'을 주장하던 서인들이나 기득권이었던 남인들이 그의 개혁에 찬성할리 없었다. 그렇게 윤휴의 개혁은 역사의 한구석에 묻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또 다른 하나는 숙종의 정치 감감이다. 13세에 즉위한 숙종이 19세에 행한 경신환국은 하루아침에 남인에게 등지고 서인을 등용한 숙종의 첫 번째 '환국'이었다.

p.285. 윤휴는 오가작통법과 지패법, 그리고 체부 설치와 만과 실시가 본래 뜻과는 달리 흐르면서 자신의 역할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어린 왕(14세)의 부름에 늦은 나이(58세)에 출사를 결심한 윤휴를 이용만 하다가 버린듯했다. 1675년 조정에 출사한 윤휴는 1680년에 사약을 받는다. 재야에 묻혀있던 대학자를 왜 정치판으로 끌어들여 명을 단축하게 했는지. 허적의 우유부단함이 외척 김석주에 힘을 실어주었고 결과는 죽음이었다. 윤휴라는 새로운 개혁가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정치적 감각은 송시열에 뒤졌는지 몰라도 미래의 흐름을 읽는 학문적 감각은 윤휴가 당시 최고였던 것 같다. 어쩌면 정도전보다도 더 개혁적인 인물 윤휴를 이 책을 통해서 꼭 한번 만나보길 바란다.

"다산초당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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