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미터O
이준영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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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창조주에게 묻고 싶었다. 자신이 태어난 이유가 대체 무엇이냐고.(p.9)

이준영SF 장편소설 <파라미터 O>의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이 소설에 담긴 모든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듯하다. 하지만 끝까지 읽어야만 소녀가 가진 의미를 알 수 있다. 또 미래 사회를 창조하는 인간과 종교적인 의미의 창조주가 충돌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도 결국은 끝까지 깊은 생각에 머물게 한다. 작가는 거기에 더욱 철학적인 화두를 던진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끝까지 묻고 우리들에게 답을 요구한다. 삶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

 

이야기는 멀지 않은 미래에 멸망의 길을 걷게 된 극소수의 인류가 '시설'이라는 작은 공간에 살아가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인간은 '인류 회의'를 중심으로 얼핏 보기에는 이성적인 사회를 이어가는듯하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비이성적인 모습이 많이 보인다. 하루 종일 기계에 의존해 쾌락에 빠져 있는 인간도 보이고, 위기 상황에서 약자들의 목숨을 자신들의 수명 연장을 위해 가차 없이 빼앗으려는 인간도 보인다. 이 소설은 SF 소설이 맞다. 심지어 정말 재미난 SF 소설이 맞다. 하지만 이야기가 들려주는 깊은 내용은 마치 철학 책을 읽는 듯하다. 우리들에게 깊은 생각을 계속해서 끌어내고 있다.

 

이야기에 주된 흐름은 시설 밖 어딘가에 있는 엄마를 찾고 싶어 하는 엔지니어 조슈가 자신만 모르고 있던 엄마의 진실에 조금씩 다가가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간단하게 줄여서 말할 수 있는 사건들이 아니라 삶의 목적, 창조주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깊이 있는 이야기들이다. 정말 멋진 이야기가 황폐한 마지막 인류를 통해서 빛을 발하고 있다.

p.281. "목적이 없다면 우린 하루하루 똥만 만드는 기계일 뿐이에요. 목적 없이는 인간답게 살아갈 수 없다고요."

 

파라미터 O는 인공지능의 극상의 모델이지 싶다. 입력한 대로 움직이는 인공지능 로봇이 아니라 지적인 활동을 하며 동료를 위한 추모도 할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 이브. 이브와의 만남이 엔지니어 조슈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게 된다. 스스로 자신들의 종족을 복제해 내는 인공지능 로봇들은 자신들을 만든 '인간'을 창조주라 부른다. 미래 사회를 만들었으니 인간을 창조주라 부를 수 있을까? 우리 인간이 인간을 창조주라 부를 수는 없지만 AI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바로 이 부분에서 조금씩 불거진 갈등은 극에 달한다.

 

과학이 만들어낸, 창조해낸 미래 사회는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에게 삶의 목적을 정해주는 '파라미터 O'에 무엇이라 적어야 하나? 인간에 대한 절대복종. 어쩌면 감정을 가진, 스스로 번식하는 인공지능들에게는 너무나 잔인한 문구가 될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만나본 SF 소설이 팍팍한 삶을 돌아보게 할 줄은 몰랐다. 너무나 큰 울림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들의 '파라미터 O'는 무엇일까? 인간에게 삶의 목적을 묻는 너무나 논리적인 AI 이브를 만나기 전에 알 수 있기를 바라본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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