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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0월
평점 :
p.61.
인생의 어딘가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새롭게
살아간다.
등단한지 20년
된 일본의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의 열네 번째 소설 <한
남자>를 만나보았다. 이 소설은 요미우리문학상을 받았고 일본서점대상 최종 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문단으로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또한 독자들의 사랑도 많이 받고 있는 소설이다. 재미나고 흥미로운 일본 소설의 장점과 함께 아름다운 문장이 더해진 아름다운
작품이다. 문장에 작가의 생각과 감성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해서 독특한 소재만큼이나 즐겁게 소설 속을 돌아다닐 수 있다.
p.24.
이따금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지만, 손을 내밀어 만져보기도 귀찮아서
스르륵 사라지는 대로 내버려두고 있었다.
이야기는
'죽음'에서
시작된다. 어린아이의 죽음으로 남편과 이혼한 후 고향으로 돌아온 한 여자(리에)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고향을 등지고, 가족을 등진 한 남자(다이스케)의 만남은 행복했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이 너무나 짧았다. 한 남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이야기는 또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다이스케의 형이 죽은 이가 다이스케가
아니라고 하면서 리에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변호사 기도가 등장한다. 아이까지 낳고 몇 년을 함께한 남편이
다이스케가 아니라면 그는 누구인가? 모든 서류상에는 다이스케가 맞다. 하지만 사람은 다이스케가 아니다. 한 남자. X는 누구인가? 왜 타인의
삶을 산 것일까? 또 다이스케 본인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변호사 기도는 아내에게 "근데 점점 타인의 인생을 살아보는 것에 흥미가 생기고 그가 그토록 버리려고 했던
인생을 상상해보기도 하고……."(p.293)라고 말한다. 타인의 삶의 흔적을 쫓다가 그의 삶을 그리게
되었다는 것인데 기도를 따라가다가 독자들도 기도의 경험을 하게 될 것 같다. 타인을 대신해서 사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또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이야기는 죽음으로 시작해서 삶으로 끝을 맺는다. 죽음을 선택하는 것과 나 아닌 다른 이의 삶을 사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살아있지만 이름은 죽은 삶을 따라가는 동안 존재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만나게 된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읽은 저자의 말이 책장을 덮을 때까지 뇌리에 남았다.
"
'책장을 넘기는 손이 멈추지 않는' 소설이 아니라 '책장을 넘기고 싶지만 넘기고 싶지 않은, 이대로
그 세계에 깊이 빠져들고 싶은' 소설을 쓸 수 있기를 항상 바라고 있습니다."
재미난 소설은
책을 손에서 놓기 힘들다. 단번에 끝을 보기 위해 멈추지 않고 읽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이 그렇다. 그런데 이 소설은 조금 다르다. 자꾸만 앞
페이지를 생각하게 한다. 또 다음 페이지를 그리게 한다.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작가의 말처럼 그 자리에 머물게 된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넘치는 작품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