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 대하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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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고양이가 등장하는 책들이 많이 눈에 들어온다. 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개나 고양이가 그리 반갑지는 않다. 하지만 글로 만나는 고양이들은 모두가 귀엽고 사랑스럽다. 우아하게 폼 잡고 길을 가는 고양이들을 보며 도리스 레싱의 에세이 <고양이에 대하여>에 등장하는 고양이들을 떠올려본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도리스 레싱은 「사랑하는 습관」과「19호실로 가다」를 통해서 만나보았던 작가이다. 소설이 아닌 에세이를 통해서는 처음 접한 작가 도리스 레싱은 여전했다. 여전히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묘사가 문장 속에서 빛났고 현실감 있는 담백한 표현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고양이에 대하여>는 1967년, 1989년, 2000년에 발표한 에세이들을 하나로 엮은 책이다. 1967년에 발표한『특히 고양이』작가의 유년 시절을 엿볼 수 있어서 읽는 즐거움이 더했다. 아프리카에서 보낸 유년 시절을 기억하며 그려낸 고양이의 모습은 야생에 가깝다. 작가가 들려주는 고양이와 함께한 에피소드들은 출산과 함께 새끼를 죽이는 잔인한 어미도 등장할 만큼 참혹하다. 그리고 개체 수를 조정하던 어머니의 부재가 가져온 혼란은 이야기를 또 다른 관점으로 접하게 만든다. 삶을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1989년에 발표한『살아남은 자 루퍼스』에는 사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보살핌을 받고 나서야 마음에 문을 연 길고양이 '루퍼스'가 등장한다. 이미 작가의 집에는 찰스와 다음 에세이의 주인공 부치킨이라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었지만 살아남는 방법을 알고 있는 루퍼스는 가족이 된다. 살아남기 위해 약삭빠르게 행동하던 루퍼스의 상처는 사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치유되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고양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이다. 고양이를 통해서 인간의 감정을 건드리고 있는 듯하다.

p.238. 누군가를 믿고 사랑하는 마음이 과거에 너무나 가혹하게 배신당한 탓에 녀석은 두 번 다시 사랑을 마음에 담지 못했다.


2000년에 발표한『엘 마니피코의 노년』의 주인공 고양이는 그 모습이 귀품이 넘쳐 엘 마니피코(귀족)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부치킨이다. 이미 영국을 너머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명성을 얻은 작가의 노년을 함께하는 늙은 고양이 엘 마니피코는 병으로 한쪽 다리를 잃게 된다. 그런 고양이의 자존감을 걱정하는 작가의 모습에서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을 작품에 담았던 도리스 레싱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여성을 넘어 인간을 사랑했던 작가는 인간을 넘어 인류를 사랑했었던 것 같다.

p.264.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은 정말 대단한 호사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충격적이고 놀라운 즐거움을 맛보고, 고양이의 존재를 느끼는 삶.

고양이와 함께 하며 그들의 행동에서 그들의 감정을 느끼는 작가의 관찰력이 놀라웠다. 또 그 관찰을 담담하게 묘사한 감성적인 표현력이 놀라웠다. 쓴 시대는 다르지만 세 개의 글 속에서 공통적으로 사람에 대한, 인류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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