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땅
김숨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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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p.183. "그야 그랬지……땅이 떠도는 것인지, 내가 떠도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떠돌았지……"

나라를 잃고 땅도 빼앗긴 조선의 민초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멀지만 아니 어딘지도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 조상들에게는 희망이 돼 주었다. 하지만 그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어 버렸을 때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했을까? 포기하지 않고 척박하고 보잘것없던 '땅'을 개간하여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렇게 굶주림에서 벗어날 때쯤 러시아에 살던 조선인들의 삶을 만날 수 있는 책을 만나보았다.「흐르는 편지」로 처음 만났었던 작가 김 숨<떠도는 땅>을 통해서 다시 만났다.

p.102. "난 땅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 땅은 인간을 노예로 만들지."

첫 만남보다 더 강렬한 느낌의 두 번째 만남이 있었을까? 사람을 만났을 때도 소설을 만났을 때도 미술 작품을 만났을 때도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제목을 보고 어딘가 낯설지 않았고「흐르는 편지」에서 받았던 느낌을 떠올려 보았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이들도 힘없는 나라의 백성으로 아픔과 고통을 겪고 있는 민초라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너무나 큰 차이점이 있다. 이들은 스스로 내린 결정으로 조국을 떠났다는 것이다.

 

p.103. "……인간이 땅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더군. 인간은 살아 있을 때는 땅의 종으로 살다, 죽어서는 썩어 땅의 거름으로 쓰이니 말이야."

조선의 농부들에게 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들에게 땅은 그 무엇보다 더, 하나님보다 더 소중한 존재였을 것이다. 가족들을 먹이기 위해,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땅'을 찾아 그렇게 국경을 넘은 민초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던 그들의 아프고 쓰라린 상처를 느껴보았다. 이 이야기는 조선의 격동기에 조국을 떠나 러시아에 정착한 조선인들이 다시 그곳에서 러시아의 격동기에 휘말리게 되는 비극적인 삶을 보여주고 있다.

 

p.171. 금실 가족이 신한촌에 정착해 살았던 지난 20년 동안 러시아는 황제인 니콜라이2세에서 레닌으로, 스탈린으로 바뀌었다.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화물 열차를 타고 정든 자신들의 정착촌을 떠나는 한인들의 한숨처럼 깊은 어둠이 자리한 열차 안이 이 이야기의 배경이다. 화물 열차 한 칸. 그 속에 강제로 타게 된 한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시어머니와 함께 열차에 탄 금실을 중심으로 열차 안에 탄 강제이주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이 소설을 전개한다. 힘들었지만 스스로 선택한 이주는 희망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제로 어딘지도 모르는 러시아 구석으로의 이주에 희망이 있을 리는 만무했고 그런 무거운 슬픔이 열차 널빤지 사이로 들어오는 빛마저도 차단했는지도 모르겠다.

 

p.145."아나똘리, 나쁜 생각들은 떨쳐버려라, 인생은 다람쥐 쳇바퀴 같은 거란다. 다람쥐가 죽어야 쳇바퀴가 멈추지……그러니 절망할 것도,기뻐할 것도 없단다."

어두운 화물 열차 안에서 귀머거리 허우재가 들려주는 노래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국경 넘어 장사를 간 금실의 남편은 금실을 찾아올 수 있을까? 귀머거리가 노래를 할 수 있을까? 금실 자신도 모르는 곳을 남편 근석이 찾아올 수 있을까? 열차 안에 민초들의 지나온 삶은 모두가 안타깝고 쓸쓸했다. 그런데 열차 안이라는 현재에서 미래를 잃어버리는 요셉과 따냐의 이야기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과거가 아닌 지금 현재에 고통을 받는 따냐의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나 달렸을까? 열차는 멈추고 그들은 다시 어디론가 보내진다. 그들의 아니 우리 조상들의 삶은 이제 어떻게 흘러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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