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
요스트 더프리스 지음, 금경숙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네덜란드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요스트 더프리스의 소설 <공화국>을 만나보았다. 소설의 첫 문장 '요시프 브리크 같은 사람은 흠잡을 데가 그다지 많지 않다.'에서 알 수 있듯이 요시프 브리크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니 브리크의 수제자 프리소 더포스의 흥미로운 일탈에 관한 이야기이다. 히틀러 연구의 권위자 브리크의 죽음이 프리소의 이성을 마비시킨 듯 프리소는 비이성적인 행위를 하게  된다. 정확하게는 브리크가 죽은 후에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되는 한 청년에 대한 질투심이 프리소를 비논리적인 상황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p.274. 이상한 일이었다. 어느 한순간 당신은 거기에 있는데 조금 뒤에는 거기에 덜 존재하며 당신의 그 부분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의아해 한다.

아마도 스승 브리크와 늘 함께하던 프리소가 스승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면서 질투심이 더 커진듯하다. 브리크의 제안으로 칠레에 '히틀러'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을 인터뷰하러 갔던 프리소는 그곳에서 다소 황당하게 큰 병에 걸리게 된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해 있던 바로 그때 스승 브리크가 죽음을 맞이한 까닭에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못한 것이다. 자신이 있었어야할 자리에 있었던 '듣보잡' 필립 더프리스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미움이 프리소를 이상한 방향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

프리소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아슬아슬하다. 재미나면서도 무모하게도 느껴지는 프리소의 행동이 긴장감을 더하고 스릴과는 전혀 상관없는 작은 사건들의 연속이지만 프리소를 바라보는 내내 불안감은 점점 더 커진다. 히틀러라는 인류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가 질투심에 사로잡혀 펼치는 비이성적인 행동의 무대는 히틀러를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하는 학자들이 모이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이름의 학회다. 프리소의 게획은 많은 이들 앞에서 필립을 망신 주는 것이다. 자신이 브리크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밝히려는 것이다. 프리소의 계획은 성공할까? 성공 유무를 떠나서 그의 계획이 참...

p.295. 예는 또한 아니요를 의미하며, 흰 것은 또한 검은 것이고, 여기는 또한 다른 곳이며, 삶은 또한 허구라는 것.

이 책은 실제와 허구를 마구 오가며 실제와 허구를 혼합해 놓아 처음에는 적응하기 벅차다. 작가 자신의 성과 필립의 성이 '더프리스'로 같고, 프리소도 작가처럼 잡지사 편집장이라는 점은 그저 애교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실제와 허구의 혼재를 접할 수 있다. 또 예술 분야 편집장답게 정말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소설 속에 인용하고 있다. 단순하고 잔잔한 이야기의 흐름은 작가가 인용한 음악을 찾아 듣고 영화를 찾아보는 동안 풍부하고 다양해진다.

스승의 죽음 뒤에 웃지 못할 촌극을 일으킨 제자 프리소는 자신의 행동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그런 주인공을 보면서 우리는 또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시작은 벅찼지만 끝까지 읽고 나서 찾을 수 있었던 의미가 너무나 좋았다.

 

p.341."공화국, 그 말은 언제 들어도 서글픈 구석이 있어. 무언가가 지나가고 난 뒤에 오는 법이니까. 왕조의 뒤에, 황조의 뒤에. 공화국은 절대 저절로 존재할 수 없지. 도대체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라는 듯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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