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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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에서 만든 '세계문학상' 최종심 후보작 <침입자들>을 만나보았다. 2009년 계간「미스터리」겨울호,「죽는 자를 위한 기도」를 통해서 등단한 정혁용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다산북스의 작품 소개 글("건들지 않으면 싸울 이유도 없다!")이나 제목에서는 추리 소설이나 범죄 스릴러를 떠오르게 하는 책이다. 소설의 첫 문장 '나의 일상은 사막이다' 역시 미스터리 소설을 강하게 떠오르게 한다.

 

강남고속 터미널에 도착한 의문의 한 남자가 구직란에 실린 '택배기사 구함'을 보고 통화를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인공이 사람들과 부딪치는 일이 싫어서 선택한 택배기사. 그런데 택배 일을 하면서 우연하게 쌓아가는 인연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 우울증을 치료하고 있다며 매일 담배 한 개비를 달라는 묘령의 여인, 고등학생들에게 맞고 다니는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것 같은 '마이클', 치매를 앓고 있는 듯한 같은 노(老)교수, 폐지를 줍는 젊은 여인 그리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까지.

p.60. 연민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을 지지못하면 동정으로 전락하고. 누구에게도 누군가를 동정할 권리가 없다.


정말 지극히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남의 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남의 '부탁'은 거부하지 못하는 말과 행동이 다른 주인공은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지식수준은 보통 이상이고 클래식을 즐겨듣는 조용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말은 얄미울 정도가 아니라 싸움을 유발한다. 남과의 대화가 싫어서인지, 대화하는 방법을 몰라서인지 만나는 이들마다 '이상하다'라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똑같은 상황에서 명령조의 갑질에는 '응징'하는 차가운 사람이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부탁'하는 이들에게는 한없이 '배려'하는 따뜻한 '행운동'이다.

 

택배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된 미스터리한 인연들 중에서 스릴러 또는 추리로 연결되는 '사건'이 발생하겠지 하며 책장을 넘기다 택배 구역이 행운동이라 자신을 '행운동'이라 말하는 이름 모를 주인공의 생각을 읽고 (p.189. 대개의 일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도망갈 수 있다면 도망가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생각했던 장르 소설이 아닐지도 모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소설의 분류와는 상관없이 재미나고 흥미롭다. 빠른 전개와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소설을 풍성하게 하고 있다.

 

p.246. 비겁, 잔잔, 소심. 삶의 모토다.

삶의 모토와는 다르게 갑질에는 당당하게 시원한 대응을 하는 대범한 택배기사 '행운동'의 이름은 끝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춘자'를 통해서 '행운동'의 과거는 조금 들려준다. 어쩌면 작가는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다음 이야기가 꼭 나왔으면 좋겠다. 아마도 다음 이야기는 긴장감 넘치는 본격적인 스릴러가 될지도 모른다. '행운동'의 이해하기 힘든 싸늘한 말투와 비아냥이 사회 전체를 향하고 있는 듯해서 단번에 읽었다. 어쩌면 우리들 모두가 타인에게는 침입자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이라는 존재 자체가 스릴러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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