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크리스티나 달처 지음, 고유경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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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4. 자유로워지려면 뭘 해야 할지 생각해봐.

      어쩌면 이 지경이 된 지금, 무언가 시작하기 좋을 수도 있겠다. 

미래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흥미로운 소설<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를 만나본다. 배경은 미래의 미국이지만 주인공 진이 네 아이와 살고 있는 현재는 가부장적인 남성들이 판을 치던 서부시대보다 더 과거인듯했다. 아니 과거 어느 시대에도 볼 수 없었던 상황에 처해있었다. 아마 원시시대의 여성들도 '말'은 하고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소설 속 여성들은 하루 '100 단어'라는 제한 속에서 말을 해야 한다. 글로도 몸짓으로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다. 오로지 하루 '100단어'로 일상생활을 견뎌야 한다. 성인 여성뿐만 아니라 어린 소녀들까지. 지구상 어떤 나라보다도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살고 있는 미국에서 가능한 미래일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미국이니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순수(Pure)운동'으로 정권을 잡은 대통령과 정권의 실세인 칼 목사가 여성들은 가정에서 가사와 육아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이제는 잊힌 오래전 생각을 현실에 옮겨놓고는 여성들의 모든 권리를 지워버린다. 그리고는 그녀들의 목소리마저 지워버린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팔목에 찬 '금속 카운터'의 전기 충격을 견뎌내야한다. 하지만 100단어가 넘어가면 조금씩 전기 충격을 가해 오다가 결국은 기절시키는 카운터의 공포는 언어학 박사인 주인공 진 마저 침묵 속에 살게 만든다. 자신이 침묵속에 사는 것도 견딜 수 없었지만 어린 딸 '소니아'가 앞으로 남자들의 하녀처럼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진을 잠 못 들게 한다.

 

소니아의 미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던 진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그녀가 연구하던 베르니케 실어증에 관한 연구를 계속해서 90일 안에 혈청을 완성시켜 대통령의 형을 치료하라는 것이다. 그동안에는 금속 카운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솔깃한 제안을 칼 목사가 직접 해온다. 여성을 혐오하는 남자들이 너무나 싫어서 처음에 거절했던 진은 다시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소니아가 학교에서 받아온 '상'에 놀란 엄마 진은 더 이상 딸의 어두운 미래를 지켜볼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하고 받아 온 상.

 

이 소설은 빠른 스토리 전개와 함께 계속되는 긴장감이 매력적이다. 팽팽한 긴장감은 결말까지 빈틈없이 이어진다. 그래서인지 그 긴장감이 해소되는 결말은 다소 평범하다. 진이 뱃속의 아기와 딸 소니아를 위해 활약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2권이 있나 하며 책의 끝을 확인해야 했다. 결말이 너무나 짧게 급하게 처리된듯했다. 어쩌면 계속 이어지는 긴장감이 갑작스럽게 해소되면서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연구를 다시 시작하는 진은 의학적인 연구를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 아니라 여성의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을 시작하게 된 것 같다. 연구에 빠져 자신의 정치적인 목소리를 포기했던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듯 여성 혐오 정권에 정면으로 맞서는 주인공 진을 통해서 권리를 지키기 위한 '외침'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정말 흥미로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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