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는 세계
미우라 시온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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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먼 곳을 보는 기능을 원하면 세포를 보는 것은 포기해야 하고, 미세한 것을 보는 기능을 원한다면 멀리 있는 별을 보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배를 엮다로 서점대상을 수상하고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으로 나오키상을 받는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을 가진 작가 미우라 시온<사랑 없는 세계>를 만나본다. 제목에서 느껴진 첫인상은 애틋하고 슬픈 사랑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격정적이거나 절절한 사랑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잔잔한 사랑이 담겨있다. 사랑이 없는 세계는 얼마나 삭막할까? 그런데 작가가 만들어낸 사랑 없는 세계는 전혀 삭막하지도 어둡지도 않다. 오히려 작가의 위트 있고 화려한 문장이 사랑 없는 세계를 밝고 환하게 만들고 있다.

 

146. 당신은 다른가에 대해 분석하고 그 차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이성과 지성이 요구된다. 차이를 서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배려하는 감정이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이야기는 이름도 특이한 양식당 엔푸쿠테이에서 시작된다. 그곳의 직원 후지마루가 우연히 대학교 연구실에 음식 배달을 가면서 가볍고 경쾌하게 소설은 펼쳐진다. 그런데 이야기는 소설이 전개되는 내내 순순하고 솔직한 캐릭터를 유지하는 후지마루가 연구소에서 한 여인을 만나면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바뀌게 된다. 주배경이 양식당 엔푸쿠테이에서 T 대학교 식물 연구소로 옮겨가고 이야기 흐름도 후지마루에서 후지마루의 사랑 모토무라로 바뀐다. 이제 시끌벅적한 식당의 사람들 이야기가 아니라 조용한 연구소의 식물들 이야기로 바뀌는 것이다.

 

100. “사랑 없는 세계의 연구에 모든 것을 바치고 싶어서라는 이유는 처음이다.


지마루의 사랑 고백은 사랑 없는 세계라는 강적을 만나 처음부터 좌초하고 만다. 모토무라는 누군가를 아니 무언가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후지마루는 모토무라의 곁을 맴돈다. 아니 그녀와 함께 사랑 없는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여기서 작가는 후지마루의 요리 연구와 모토무라의 식물 연구의 접점을 보여준다. 두 연구 사이의 접점은 열정인듯하다. 그렇다면 후지마루의 사랑과 모토무라의 사랑도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18. 후지마루는 말로는 잘 표현할 수 없었지만, 결국 요리란 건 생과 사를 잇는 멋진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읽는 동안 제발하는 마음을 참 많이 갖게 만든 소설이다. 제발 두 주인공의 사랑이 이어지기를, 제발 마쓰다 교수가 아픈 과거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기를, 제발 어려운 식물학, 유전학 이야기는 그만 등장하기를, 제발 PCR은 그만 나오기를, 그런데 제발하며 간절히 읽는 동안 식물학에 눈을 뜨게 되고 후지마루처럼 식물 연구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아마도 그런 까닭이 작가 미우라 시온에게 일본식물학회가 주는 특별상을 안겨주었는지 모르겠다. 이 소설을 읽게 되면 누구라도 사랑 없는 세계와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다. 열정적인 사랑은 만날 수 없지만 또 다른 열정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열정이 만들어낸 사랑 없는 세계와의 만남은 밤하늘의 별처럼 아름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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