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형에 이르는 병
구시키 리우 지음, 현정수 옮김 / 에이치 / 2019년 11월
평점 :
- 어서,어서 대답해야 해.
- 네가 좋아하는 대로 해도 돼.
- 선택해도 돼. 너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으니까.
- 네가 어떤 답을 내더라도, 나는 그것에 따르겠어.
2012년『헌티드
캠퍼스』로 제19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 독자상을, 『적과 백』으로 제25회 소설 스바루 신인상을 수상한 구시키 리우의 <사형에 이른
병>을 만나보았다. 연쇄살인범의 심리와 살인마로 인해 심각한 육체적, 심리적인 피해를 입은 이들의 심리를
너무나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소설의 시작을 맛보았다면 단번에 끝까지 읽어야 하는 치명적인 재미를 담은 책이다.
전형적인 질서형
살인범 하이무라 야마토의 타깃은 열여섯 살에서 열여덟 살의 고교생으로 염색도, 피어싱도 하지 않은 용모단정한 남녀 청소년들이다. 야마토가 그렇게
정성 들여 선택한 대상은 공식적으로 24명이다. 그들의 목숨을 빼앗고 생각만 해도 아찔한 '전리품'을 챙기던 야마토는 결국 경찰에 잡혔고 그중 9건의 살인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런데 이 살인마
야마토가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선다. 어차피
사형되겠지만 9건의 사건 중 마지막 한 건은 맹세코 자신의 범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야마토가 챙긴 전리품은 무엇일까? 그는 왜 억울하다고 하는
것일까? 야마토의 너무나 잔인한 소년 범죄 이력만 보더라도 전혀 억울할 것 같지 않은데.
p.348."법률에서
살인을 살인죄로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은 '고의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했는가'여부야. 요컨대 의사의
문제지."
이야기의 시작은
존재감 없는 대학 생활을 하고 있던 마사야가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야마토의 편지를 받으면서 전개된다. 보잘것없는 대학을 다니며 취직 걱정에 시름해야 할 마사야는 야마토의 청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마사야는 연쇄살인범의 유형과 심리에 관한 책을 읽고, 사건 기록을 토대로 관련자들을 만나 진실을 밝히려 노력한다. 정말
오랜만에 활기찬 날들을 보내며 예전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간 듯하다.
아니, 마사토의
인생에 깊숙이 빠져들어 마사토와 비슷한 인간이 되어가는 듯하다. 자신감을 넘어 타인을 무시하는 우월감에 취해버린다. 그런데 마사야 자신은 우등생
시절의 자신감 넘치던 자신으로 돌아왔다는 심각한 착각에 빠진 체로 진실을 찾아 헤맨다.
p.274. 하이무라 오리코에게 맡겨진 것은 옛날이야기의 해피엔드가 아니라, 새로운 인생의
출발선이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잊을만하면 놀라운 반전을 보여주는 참 신기한 소설이다. 마사야와 야마토의 접점은 무엇일까? 야마토는 왜 마사야를 선택했을까? 정말
야마토는 억울한 상황에 처한 것일까? 도대체 진실은 무엇일까? 마사야는 끝까지 자신의 존재감을 찾지 못할까? 야마토의 억울함은 풀 수 있을까?
야마토가 준 사진을 보고 마사야는 왜 그렇게 놀랐을까?
살인마의 인생을
추적하다가 마주하게 되는 자신의 삶에 놀라는 마사야. 자신이 알고 있던 자신의 인생이 왜곡된 삶이었다면, 그리고 그 왜곡된 삶을 남의 인생
속에서 만나게 된다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정말 한도 끝도 없는 의문들로 책장을 빠르게 넘기게 하고 그때마다 상상하지 못했던 반전으로 답을
주는 작가의 매력에 푹 빠질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살인마 야마토를 만나게 된다면 그 어떤 '선택'도 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선택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지금 바로 살인마 야마토가 기다리고 있는 <사형에 이르는 병>을 선택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