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연인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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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16.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주위를 돌던 작은 비행기들은 이제 보이지 않았지만, 그 건물은 여전히 희망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희망했다. 나는 희망하고 있다. 나는 희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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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고전을 읽는듯한 느낌으로 만났었던 「모스크바의 신사」를 통해서 처음 접했던 작가 에이모 토울스를 다시 만나보았다. 작가의 데뷔작인 <우아한 연인>을 통해서 다시한번 작가의 우아한 문장들을 만나본다. 피츠제럴드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피츠제럴드의 대표작 「위대한 게츠비」를 연상케하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게츠비의 연인이었던 데이지보다는 조금 더 순순한 연인 케이티를 만날 수 있다. 물론 팅커 또한 게츠비보다는 조금 더 순순한 것 같다. 성공을 위해 타인을, 자신을 속이는 이들의 끝을 통해서 우리가 찾아야 하고 추구해야 하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보게 한다.


p.142. "뉴욕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문제가 바로 저거야. 남들처럼 뉴욕으로 도망칠 수가 없잖아."

p.184. "뉴욕은 정말 사람을 확 바꿔놓지 않아?"


사람은 쉽게 변한다고 흔히들 말한다. 아마도 이 말은 선한 사람들이 악의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또 말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이 말은 아마도 악의 향기에 취한 사람이 선한 세상으로 잘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생겨난 말인 듯하다. 두 문장에 주어는 모두 우리 인간, 사람이다. 그런데 술어는 전혀 다르다. 그만큼 인간은 다양한 모습을 띈 묘한 심성을 가진 것 같다. 특히 위기의 순간에는 선과 악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반대편을 바라보고는 한다. 그런 위기의 순간에는 언제나 선택의 순간이 주어지고 그 선택의 결정은 다양한 방향으로 우리들 인생을 변화시키고는 한다. 장난꾸러기 같은 젊은이 디키의 선택은 밝은 미래에 다가서게 했다. 하지만 월러스의 선택은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p.469. 용감한 사람들이 모두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한 명씩 차례로 반짝이다가 사라져, 원하는 것에서 스스로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앤이나 팅커나 나 같은 사람들만 뒤에 남았다.


그런 변화를 위한 순간에 선과 악이 다투게 된다면 우리의 선택은 선일까? 악일까? 아니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일까? 자신의 성공을 위해 선택한 길이 정상적인 평범한 길이 아니라면 그 길에 끝에는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팅커 그레이와 케이트 콘텐트. <우아한 여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양한 순간에 다양한 선택을 하고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은 1930년대 말 뉴욕이다. 누구나 성공의 기회가 있었던 1930년대 말 미국 그것도 미국 경제의 심장인 뉴욕에서 펼쳐지는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가 아름다운 고전 작품처럼 전개된다. 문장 하나하나가 제목처럼 우아하다.


p.533. 여든두째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은 나서지 않고, 약속을 지키려고 주의한다.


그런데 표지에 적힌 원제「Rules of Civility」는 책 제목과는 무엇인지 모를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의 원제는 주인공 팅커 그레이가 자신의 삶에 모토로 삼았던 책의 제목이다. 대부분의 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부록'을 통해서 소개되고 있는 조지 워싱턴이 쓴 「Rules of Civility & Decent Behavior」이다. 역자는 이 제목을 「사교와 토론에서 갖추어야 할 예의 및 품위 있는 행동 규칙」이라 번역하여 부록에서 소개하고 있다. 조지 워싱턴이 성공의 의지를 다지며 16세에 썼다는 이 글에는 110 개의 '다짐'이 있다. 성공이 삶의 이유였던 팅커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책이었던 조지 워싱턴의 다짐을 만나보는 것도 이 책이 주는 재미 중에 하나이다. 그 어떤 처세술보다 우아하고 예의 바른 다짐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p.477. "우리가 자신과 완벽히 맞는 사람하고만 사랑에 빠진다면, 애당초 사랑을 둘러싸고 그런 소동이 벌어지지도 않을 거야."


지금보다는 조금 더 순수했던 시대의 사랑이 두 연인의 사랑을 방해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자신의 사랑이 순순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괴로워하며 결별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을까? 있다고 해도 그리 많지는 않을 듯하다. 텅커와 케이트가 살았던 시대보다는 더욱더 물질적인 부(富)가 성공의 척도가 된 오늘이니 말이다.


p.402.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대개 그런 보편적인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풍부한 증거와 맞닥뜨린다.


순수한 사랑을 찾는 케이트, 성공에 목말라하던 팅커, 진정한 삶을 찾는 월러스, 그리고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디키 등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은 촘촘한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우리에게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그중에서도 앤 그랜딘 부인이 던지는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여자도 누군가에 의지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는. 그런데 이 메시지는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성별을 떠나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인듯하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에서 남을 '탓'하며 자존감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사는 것 같다.


p.209. 사람은 반드시 소박한 즐거움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아함이나 박학다식처럼 온갖 화려한 유혹들에 맞서서 소박한 즐거움을 지켜야 한다.


p.414.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요한 것보다 원하는 것이 많아요. 그래서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거예요. 하지만 이 세상을 움직이는 건 필요한 것이 원하는 것을 능가하는 사람들이에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서 진정한 사랑과 성공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다. 어떤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었을까? 이브와 팅커의 사랑을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케이트에 대한 팅커의 마음을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팅커가 선택한 성공의 길을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도덕적인 삶이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면 도덕적인 길을 계속 가야만 할까? 아마도 그 해답은 '진정한 사랑과 성공'의 의미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달린듯하다. 삶의 진정한 성공이 물질적인 성공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완벽한 사랑이 진정한 의미의 사랑은 아닐 것이다.


뉴욕의 한 재즈클럽에서 시작하는 1930년대 말 젊은이들의 방황을 함께 해보길 바란다. 자신들의 진정한 사랑과 성공을 찾아가는 젊은이들의 여정을 꼭 함께 해보기를 바란다. 그 속에서 우리가 찾아가야 할 진정한 삶의 행복을 만나보기를 바란다. 벌써부터 에이모 토울스의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사람의 마음을 이성적으로 우아하게 표현한 재미와 감동을 함께 느끼게 해주는 작품을 또 만나보고 싶다. 우아한 고품격의 재미를 찾는다면 깊어진 가을을 함께 하기에 손색이 없는 우아한 책 <우아한 연인>을 만나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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