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병 속 지옥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6
유메노 큐사쿠 지음, 이현희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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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미디어가 만들어내고 있는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여섯 번째 책을 만나본다. 이번 책은 1920년대 중반에서 1930년대 초반까지 활동한 작가 유메노 규사쿠(ゆめのきゅうさく) 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에게는 낯선 작가이지만 일본 추리 문학계에서는 나름 인지도가 있는 듯하다. 본명은 스기야마 다이토인데 필명 유메노 규사쿠(夢野久作)는 '몽상가'라는 뜻이라고 한다. 작가가 부친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 지은 필명이라 하는 데 이번 작품집을 읽어보면 필명이 저절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정말 타고난 이야기꾼을 만난듯했다. 1926년 『기괴한 북』으로 데뷔한 작가는 독특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었는데 그중에서도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도구라· 마구라(ドグラ ·マグラ)』일본 추리소설사의 3대 기서(奇書)라고 한다.

 

<유리병 속 지옥>에는 크게 12편의 단편들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유메노 규사쿠의 데뷔작인 『기괴한 북』이 자리하고 있다. 당시 일본에서는 에도가와 란포가 말했듯이 '탐정소설을 유행시키기 위해 탐정소설과 비슷한 일군의 소설을 편의상 탐정소설에 속하게 하는 경우'(p.429)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작가의 소설들이 그런 일군의 소설에 포함되는 것 같다. 우선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 중에 직업이 탐정인 사람은 단 일 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나마 『노순사』라는 이야기에 퇴직 경찰이 나와서 사건을 해결한다. 솔직히 추리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소설은 이 작품 하나인듯하다.

 

『시골의 사건』은 신문의 단신란에 나올법한 재미난 이야기들이 다수 담겨있다. 후쿠오카 북부의 시골을 주 무대로 한 신기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는 데 순박한 시골에서'알리바이'가 갖게 되는 의미는 정말 재미나다. 무지가 만들어낸 정말 재미난 이야기들이 있는가 하면 『기괴한 꿈』에서는 무지한 시골이 아닌 근대화된 도시에서의 막연한 두려움을 보여주고 있다. 공장, 비행기, 도로, 병원 등 근대화가 만들어낸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재미나게 그려져있다. 그런데 신문기자였던 당시의 기억이 좋지 못했는지 『미치광이 지옥』등에서 보이는 기자의 이미지는 썩 좋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유리병 속 지옥』을 만나고 이 단편집의 제목으로 왜 이 작품이 선택되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수록된 나머지 작품들도 훌륭했지만 이 작품은 조금 더 훌륭했다고 해야 할까. 무인도에 표류한 사람들의 심리를 표현한 작품들은 많이 있다. 하지만 친 남매가 작은 섬에 표류하며 겪는 이야기는 처음 접해보았다. 소년과 소녀로 처음 표류했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조금씩 성장해 가면서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육체적인 성장에서 오는 두 남매의 심리적인 괴로움을 정말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너무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다양한 장르를 만들어내고 있는 단편집이다. 평소에도 장르에 의미를 두지 않고 소설을 접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마치 '소설 종합 선물 세트'같았다. 판타지 이야기도 등장했다가 사회 문제도 다루다가 스파이 이야기까지 다루는 정말 흥미롭고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같은 흐름을 가진 이야기가 아니라 전혀 다른 흐름의 이야기들이 연속하고 있어서 너무나 즐겁게 다음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시시각각 변하는 흐름 속에서도 전체적으로 변하지 않는 큰 흐름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작가의 뛰어난 '심리 묘사'이다. 수록된 모든 작품에서 깊이 있는 심리 묘사를 만나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심리 묘사의 배경은 '광기'에 있는 듯하다. 정신병원의 병실이 배경이 되는 작품도 있고 정신병 환자의 독백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작품도 있다. 그리고 그 광기가 만들어내는 '꿈'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 듯하다. 미친 것인지 미치지 않은 것인지 애매하고, 꿈인지 생시인지가 애매한 정말 신비한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에서 탐정은 만날 수 없었지만 탐정 없이 즐기는 추리소설의 재미를 제대로 맛 보여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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