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X: 고치고 보완하고 바로 잡다.
그리고 마음깊이 기억하다.
대만 작가 워푸의 독특한 작품 <픽스FIX>를 만나본다. 작가가 사용하고 있는 필명 ‘워푸 ’는 영어 wolf 의 중국어 발음과 유사하며, 영문 필명은 Wolf Hsu라고 한다. 제목보다 더 독특한 필명을 사용하고 있는 워푸가 들려주는 추리 속으로 들어가 본다. 그런데 제목이나 필명의 독특함을 그저 평범한 수준으로 돌려세우는 이 책의 독특한 이야기는 다음 페이지를 손에 잡고 읽을 정도로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대만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일곱 개의 사건을 바탕으로 작가의 예리한 추리가 더해져서 종전과는 전혀 새로운 결말을 짓게 되는 일곱 개의 허구를 만들어 냈다.
실화 속에서 다양한 거짓으로 범인으로 내몰린 이들이기에 허구인 소설에서는 그 혐의를 벗을 수 있으리라 믿으며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허구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실화나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있는 추리 소설이어서 억울한 사연을, 거짓된 죄목을 해소 시켜 주지는 않았다. 현실에서 거짓말처럼 벌어진 사건들과 허구인 소설에서 촘촘히 제시되고 있는 증거와 진실들은 또다시 7개의 거짓을 만들어 놓았다. 이제 거짓에 의해 잡혀있던 이들에게 작은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거짓을 사실처럼 믿고 살아야 하는 경우가 대만에도 있는 가 보다. 진실이 현실이 되고 거짓은 과거 속으로 사라졌으면 좋겠다.
이야기는 추리 소설을 쓴 또는 쓰고 있던 작가들에게 한 건의 메일이 전달되면서 빠르게 전개된다. 온라인상 닉네임 이 아귀인 자가 메일을 보내면서 일곱 개의 추리 소설은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일곱 개 작품은 각기 별도의 실화를 재구성한 추리 소설들로 진범은 따로 있다는 느낌을 진하게 받았다. 진범이 따로 있다면 지금까지 감옥에 갇혀 자유를 박탈당한 체 날이 갈수록 앙상하게 여위고 있는 이들의 진실은 꼭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추리 능력을 바탕으로 일곱 개의 억울한 거짓들을 밝혀내고 고치려고 해봤지만, 아직도 같은 아픔을 품고 같은 억울함을 가진 이들이 많이 있다는 데 놀랐다.
아귀와 작가의 토론은 이야기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아!’하고 감탄하고 있다 보면 어느새 거짓된 길로 들어서려고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일곱 개 작품 속의 작가들은 모두가 정직하고 바른 생활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인듯하다. 어쩌면 그런 정직은 거짓을 파헤쳐 진실을 밝히는 데 꼭 필요한 덕목일 것이다. 그리고 지난 30년간 일어난 억울한 사건의 해결은 감옥에 있는 이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밖에 있는 우리들을 위해서 꼭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정의가 구현되는 삶은 그 무엇보다 기초적인 삶이다. 그런 기초가 흔들릴 때 국가는 ‘고치고 보완하고 바로 잡아야’할 것이다.
그런 정의로운 역할을 하던 ‘아귀’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귀가 글을 쓰는 방법이나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법까지 너무나 해박한 지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아귀는 발표되지도 않은 소설의 줄거리를 놓고 언쟁을 벌이고 수정을 말하고 있다. 그가 아니 그녀일지도 모르는 아귀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어떻게 출판 전인 책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편집자나 편집장일까? 아귀의 정체를 알고 나면 놀라울 것이다. 모든 질문들에 답을 단번에 찾는 즐거운 경험을 꼭 한번 해보시길 바란다. 아귀의 정체를 알려줄 때 쯤이면 소설은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끝에서 진실은 밝은 빛을 발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억울한 사람이 조금씩 줄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억울한 누명을 쓴 거짓의 피해자들을 진실의 밝은 빛 아래로 모이게 하려고 쓴 이야기 같다. 어떻게 경찰이 저런 식의 수사가 가능한건지 또 어떻게 타인에게 그렇게 죄를 떠넘길 수 있는지, 그리고 범인의 증언만으로 공범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지 등 수 많은 사회적인 문제점들을 이야기에 잘 녹아들게 하고 있다. 거기에 이 책의 독특함이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특별함은 소설 자체의 독특함과 이야기 속에 깊게 흐르고 있는 문제의식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이 가진 보다 큰 특별한 매력은 글쓰기를 특히 추리 소설 쓰기를 가볍지만 진지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정말 재미난 이야기를 원한다면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진지한 사회문제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짧은 소설을 쓰고 싶다면 아귀의 글쓰기 수업을 들어보기를 바란다. 그런데 솔직히 작가와 토론을 벌일만큼의 실력이라면 책을 읽기보다는 쓰는 쪽이 더 좋을 듯하다. 더위와 장마로 인해 어딘지 모르게 막힌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요즘 그 답답함을 단번에 시원하게 뚫어줄 흥미로운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