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p.104. 머리카락을 잃었다.

존엄성을 잃었다.

제정신을 잃었다.

해박한 정신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사이코 스릴러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는 제바스티안피체크의 <소포>를 만나보았다. <내가 죽어야 하는 밤>을 통해서 만나보았던 작가 제바스티안피체크는 이번 작품에서도 인간의 심리를 너무나 극적으로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작가가 왜 사이코 스릴러의 대명사로 불리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이야기도 너무나 재미나고 흥미롭게 읽었는데 작가가 권말에 수록한 독자들의 편지들도 무척이나 흥미롭게 읽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독자들의 편지 속에서 많이 언급된 <영혼 파괴자>를 만나볼 생각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가끔은 미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너무나 재미나서 미치도록 결말이 보고 싶을 때도 있고, 너무나 지루해서 미치도록 책장을 덮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만나게 된 작품 <소포>는 진짜 미칠 것 만 같았다. 주인공 엠마를 따라서 이야기 속을 헤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엠마는 진짜 정신병에 걸린 걸까? 어릴 때 옷장 속에 있다고 믿었던 아르투어가 정신과 의사가 된 엠마의 정신 속에 아직도 살아있는 걸까? 엠마가 보고 느낀 것들이 현실일까 아니면 그녀의 상상일까?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들의 진실은 무엇인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어서 엠마처럼 미칠 것 만 같았다. 그런데 엠마는 정말 미친 것일까?

 

조금씩 엠마가 겪었다는 사건이 허구일 것 같다는 의구심이 생기고 형사인 남편 필리프의 의견에 동조하게 될 때쯤 그녀가 소포를 하나 받게 된다. 아니 이웃의 소포를 보관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가 겪었던 사건보다 더 큰 사건을 불러오게 된다. 그런데 소포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도 현실인지 엠마의 상상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어떤 것이 진실일까? 엠마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고 또 그녀는 무엇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이야기의 결말을 알기 전에 엠마의 머리카락을 자른 연쇄살인마 이발사로 누군가를 의심했고 드디어 그자가 범인인듯했다. 그런데 아직도 조금 남아있는 뒷부분이 어라 아닌가하는 의심을 품게 했고 그 의심은 정확하게 진실로 맞아떨어졌다. 내가 의심했던 범인은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사이코패스 이발사는 아니었다. 바로 다음 페이지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이야기는 긴장감 있게 빠르게 전개된다. <소포>를 손에 잡으면 단번에 풀어내 내용물을 끝까지 확인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정말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리고 그 위에 각자의 특색 있는 색깔을 입혀서 쉴 틈 없이 순식간에 결말에 다다르게 하는 마력을 가진 소설이다.

 

p.125. 뭐라고 적혀 있었는데?”

아주 오랜만에 남자한테서 들은 가장 멋진 말.”

사랑합니다?”

엠마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당신을 믿어요.”

 

이야기 속 엠마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사랑이 아니라 믿음이었다. 그녀의 말이, 그녀가 겪은 사건들이 상상이 아니라 실제라는 것을 믿어주는 것. 하지만 그녀를 믿고 있다는 사람들조차도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기 어려웠다. 숨 가쁘게 단숨에 이야기의 결말을 만나고는 엠마에게 가장 큰 아픔을 준 사람은 누구인지 또 그 아픔의 시작은 누구였는지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렸을 때 윽박지르던 아버지였을까? 아니면 옷장 속에 있던 유령 아르투어였을까?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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