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아메리카 JGB 걸작선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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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81. "알다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질병이니 말이다. 그 질병은 '타인'이라는 이름이지. 머지않아 이곳에 도달할 게야. …하략…."

 

「타임스」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50인'에 선정된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J.G.Ballard)의 아홉 번째 장편 소설 <헬로 아메리카>를 만나본다. 현대문학 'JGB 걸작선' 첫 번째 책이다. 현대문학에서 작가의 걸작들 중에서 첫 번째로 소개한 작품이라 더욱 큰 기대를 품고 <헬로 아메리카>로 들어가 보았다. 작품에 대한 기대는 새롭게 접하게 된 작가의 또 다른 작품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밸러드풍'이라는 형용사를 만들게 한 작가 밸러드의 작품 <헬로 아메리카>의 첫 느낌은 '섬세함'이었다. 표현이 너무나 섬세해서 마치 그림을 보는 듯한 그림 중에서도 정밀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섬세한 표현을 위한 독특한 문장이 두 번째 느낌 흥미로움을 주었다. 전체적인 스토리를 만나기 전에 흥미로운 작가의 문장을 만나보는 즐거움도 정말 컸던 작품이다.

 

P.114. 웨인은

대원들을 둘러보며

그들이 미국 땅에서 보낼 마지막 나날을,

수집해야 하는 표본과 서류를,

찍어야 하는 상세한 사진 자료를,

다음 탐사대를 위해 주석을 달아야 하는 지도를

언급하기를 기다렸다.

 

이 작품은 1981년에 미래에 그것도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미국의 붕괴를 배경으로 쓰였다. 1980년대라면 지금보다도 더 세계의 중심에 서 있었던 미합중국의 붕괴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그 붕괴 원인이 전혀 낯설지가 않고 공감하게 된다. 1990년대 초반 미합중국은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붕괴된다. 그리고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200년 전 '자유의 여신상'의 나라 미국으로 이주했던 많은 미국인들은 반대로 각자 선조의 나라로 돌아간다. 그리고는 그 나라에 맞게 이름도 고치고 새로운 삶을 꿈꾼다. 하지만 미국인 혈통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게 된다. 지금도 일부 미국인들이 자행하는 인종차별에 대한 벌인듯해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버려져있던 아메리카 대륙의 조사를 위해 2114년 특별한 탐사대가 꾸려지는 데 그들의 선조들이 미국인이었다는 것이 선별 기준이 된다. 어쩌면 못 돌아올지도 모르는 길을 오게 된 탐사 대원들의 다양한 모습들은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물론 망가진 미국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등장인물들에게 주어진 역할은 작지만 각자가 가진 사연만큼 이야기를 흥미롭게 해준다. 가장 흥미로운 사연은 역시 주인공 웨인의 몫이다. 웨인은 탐사대의 일원도 아니고 그저 '아메리칸드림'의 실현을 꿈꾸며 몰래 승선한 밀항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탐사대를 이끌어나가는 리더가 되어있다. 작가는 미국은 붕괴시켰지만 '아메리카드림'은 파괴하지 않은 듯하다. 탐사 대원들 또한 사막의 열기와 갈증을 겪으면서도 서부로 향하는 꿈만은 포기하지 않는다.

 

P.141. 모든 종교가 사막에서 시작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막은 사람의 정신을 확장시킨 영역이다.

 

이 소설에는 미국을 떠나지 않았던 원주민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들 부족들의 명칭이 너무나 재미나다. 그리고 교수 부족, 관료 부족, 갱단 부족, 이혼자 부족 등 명칭부터 흥미로운 원주민들을 통제하는 미국의 45대 대통령이 등장한다.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별난 미치광이 같은 대통령 맨슨은 열대우림이 되어버린 라스베이거스 일대를 지배하고 통치하며 자기가 미국의 45대 대통령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대통령 트럼프가 45대 대통령이다. 둘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기이하고 별난 언행으로 이슈가 되는 점은 트럼프와 맨슨이 비슷한데 확실한 차이를 보이는 점이 있다. 맨슨을 지지하는 세력이 멕시코 10대들이라는 점이다. 지금 멕시코의 10대들이 트럼프를 지지할까?

 

작가가 상상한 범주 안에서 살았었다는 점이 비교하며 읽을 수 있다는 즐거움을 주고, 앞으로 에너지와 환경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맨슨 아니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흥미로움도 주는 작품이다. 소설이 전개되는 내내 망가진 미국의 디스토피아를 섬세하게 그리고 있지만 그 속에서 '아메리칸드림'을 줄기차게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다. 불행이 있기에 행복이 있다고들 하듯이 디스토피아를 보여주면서 유토피아를 꿈꾸게 하는 희망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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