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선비의 서재에 들다

역사, 선비의 서재에 들다 - 고전에서 찾아낸 뜻밖의 옛 이야기
배한철 지음 / 생각정거장 / 2019년 3월

색다른 시선으로 역사를 들여다보았던 흥미로운 책 <얼굴, 사람과 역사를 기록하다>의 저자 배한철이 또다시 역사의 흥미로운 이면을 들려주고 있는 <역사, 선비의 서재에 들다>를 만나본다. 우리는 학교에서 왕들의 삶을 중심으로 기록된 왕조와 역사적인 사건의 주인공들 중심으로 역사를 배웠다. 즉 정사라고 일컬어지는 실록의 기록들을 중심으로 배운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승자들에 의해 기록된 실록은 어쩌면 역사의 단면만을 보여주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 책은 실록에 기록된 누워있는 평면적인 역사를 다양한 기록들을 통해서 일으켜 세워 3D 입체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역사적인 인물들의 한쪽 면만이 아니라 그 뒷면까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실록이 들려주는 무겁고 딱딱한 이야기를 율곡 이이의 <석담일기>,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같은 당시를 살았던 선비들의 문집과 유몽인의 <어유야담>, <고금소총> 같은 야사집을 통해서 재미나고 흥미롭게 재탄생시키고 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도 왕에서부터 정승이 된 노비, 여인들에 이르기까지 이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만큼이나  다양하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 다양한 많은 이야기들을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 사건을 두고 다양한 관점을 가진 책들이 들려주는 재미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땅콩과 아몬드 중에 우리 땅에 먼저 들어온 것은 무엇일까? 조선 최고의 책략가 한명회의 최후는 어땠을까? 등의 재미난 이야기들이 차고 넘친다.

백성을 버리고 도망친 한심하고 무능한 왕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한 선조에 대해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위대한 선비 율곡 이이는 자신의 문집 <석담일기>를 통해서 전혀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 왕이 되지는 못했지만 웬만한 왕들보다 유명한 사도세자의 삶도 무척이나 흥미롭게 보여준다. 노론에 의해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 아버지 영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불쌍하고 안쓰럽게 만 느껴지던 사도세자를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에서 전혀 다르게 이야기하고 있다. 율곡이 이야기하는 선조와 혜경궁 홍씨가 들려준 사도세자 이야기는 역사는 단면만으로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알고 있던 단면의 역사를 다방면으로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또한 실록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많은 사건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준다. 선비들이 기록한 개인적인 문집에서 역사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 조금 더 자유롭고 조금 더 재미나다. 그런 자유로운 이야기들을 통해서 왕의 새로운 면을 만나 보기도 했고, 점잖은 선비의 낯 뜨거운 바람기도 만날 수 있었다. 민담이나 야사 속에 등장하는 위인들의 모습은 낯설을 정도로 놀랍고 흥미롭다. 그 낯선 민낯이 역사를 더욱 진실에 가깝게 해주는 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모시던 왕비를 첩으로 달라고 조르는 파렴치한 인간을 꼭 만나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