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자살되세요, 해피 뉴 이어
소피 드 빌누아지 지음, 이원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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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P.45.죽는 것이 두렵지 않으면 사는 것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어느 정도는.

 

P.149. 나는 그 여자를 모른다...그렇지만 그 여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다. 나는 그녀를 죽음의 문턱까지 배웅했고, 그 여자는 나를 생명의 문턱으로 배웅했다.200미터 릴레이처럼 우리는 바통 터치를 했다. 그녀가 고이 잠들어 있는 동안 나는 계속 달릴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갈 거다.

 

P.168. "실비, 불행에 크고 작은 건 없어. 불행한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는 거니까.

 

P.171. 이번에 나를 취하게 만드는 건 알코올이 아니라 인생이다.

 

P.175~176. 나는 머릿속의 여자와 건배를 한다. 그 여자에게 고맙다...그 여자 덕분에 나는 살아 있고,은둔처에서 밖으로 나오는 길을 찾았다. 내가 몰랐던 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나는 베이스 리듬에 맞춰 심장이 뛰는 걸 느낀다. 나는 말할 수 있다. 오늘 저녁 내 자리는 행복한 무리속이라고.

 

P.188. "....내가 매장하려는 것이 내버려지고 외로운 한 여자일 뿐만 아니라 나의 고독이기도 하다는 걸 깨달았거든."

 

제목부터 시선을 강탈해 버리는 강렬한 소설 <행복한 자살되세요, 해피 뉴이어>를 만나본다. 제목은 강렬한 죽음을 말하고 있지만 표지의 전체적인 이미지는 밝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내고 있다. 자살과 해피를 한 문장에서 만나니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 묘하게 작품 속으로 끌려들어 가게 한다. 참 묘한 매력을 가진 책이다. 묘한 매력을 가진 이 이야기는 소피드 빌누아지라는 프랑스 작가의 소설 데뷔작이라고 한다. 접해보면 알겠지만 신인의 폐기가 구석구석에서 느껴지는 역동적인 작품이다.

 

너무나 역동적이어서 숨이 찰 때도 있지만 반대로 너무나 감성적인 문장들이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한다. 주인공 실비의 변덕스러운 노처녀 히스테리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듯하다. 45세라는 중년의 나이에 아버지의 죽음으로 혼자가 된 실비는 '자살'을 꿈꾼다. 그것도 모두들 행복에 젖어있을 크리스마스 때의 자살을 계획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심리치료사'에게 이야기하게 된다. 심리치료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피곤 할 지 상상이 가는 대목이다. 크리스마스에 자살을 계획하는 외로움과 무력감에 빠진 고독녀 실비에게 멋쟁이 심리치료사는 어떤 처방을 내릴까?

 

심리치료사 프랑크의 처방이 이 이야기의 어둠을 날려버린다. 시원하게. 처방에 따라 실비가 보여주는 유머나 해학은 죽음이라는, 자살이라는, 고독이라는 어둠 속이 아니라 설렘과 웃음, 즐거움이 가득한 빛 속에 있다. 밝은 빛 속에서 죽음을 생각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역시 주인공 실비의 오래된 고독의 내공은 여전히 자살 언저리를 헤맨다. 크레바스 속에 갇힌 오랜 고독을 깨부술 수 있는 것은 외부에서 비치는 빛이 아니라 실비 자신의 내부에서 비치는 빛일 것이다.

 

고독의 크레바스 속에서 실비를 구원해줄 열정의 불빛은 어디에서 만나게 될까? 실비의 마음속에서 삶에 대한 열정의 불꽃을 피우게 되는 계기는 무엇일까? 실비가 외로움에 지쳐 삶을 접으려 할 때 보았던 강물에 떠있던 남자는 자살을 그리게 했다. 하지만 지하철역에서 죽어가던 한 여자는 실비에게 살아야겠다는 강한 희망과 열정을 선물한다. 같은 죽음을 보고 심지어 강물의 남자는 살고 지하철역의 여자는 죽었는데 무엇이 실비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을까? 어떤 죽음은 실비에게 삶의 열정과 에너지가 되고 어떤 삶은 실비에게 자살을 생각하게 하였는지 실비의 감정 변화를 따라가보는 재미도 상당한 작품이다.

 

삶의 에너지를 새롭게 얻게 된 실비가 한 처음 행동은 무엇일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아니 매일 꿈꾸고 있을지도 모를 그 일을 행한다. 역시 시원하게. 그리고는 자신이 계획한 또 다른 일에 친구들을 끌어들인다. 유일한 친구 베로니크와 새롭게 친구가 된 누군가와 함께 정말 의미 있는 일을 꾀하고 그 일을 통해서 세 사람은 각자의 슬픔에서 아픔에서 자유로워진다. 누군가의 아픔을 슬픔을 고독을 치유하기에 충분한 따뜻함을 가진 작품이다. 고독에 사로잡혔던 실비가 자살률 1위인 우리나라 자살률을 단번에 낮춰줄 것 같다. 지금 우울하거나 외롭다면 크리스마스에 자살을 계획하고 있는 실비를 만나보길 바란다. 지금 삶이 무료하고 지루하다면 심리치료사 프랑크의 처방을 받아보시길 바란다. 실비와 프랑크의 엉뚱함이 만들어낸 삶의 에너지는 상당히 오랫동안 크레바스를 녹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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