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7
정용준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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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한국 문학의 흐름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일곱 번째 작품을 만나본다. 이번 작품은 200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2016년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한 정용준 작가의 <유령>이다. 권말에 수록된 작품 해설에서 박혜진 작가는 ‘<유령>은 악과 악인에 대한 정용준의 존재론적 보고서다(P.189)라고 쓰고 있다. 유령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그 자체를 논하는 것 자체가 다분히 주관적인 것 같다. 그런 유령을 제목으로 하고 작가는 악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정확히는 악인의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에 누군가와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해를 가했을 때는 사회적인 제도에 의해 제재를 받는다. 그 기본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배려에 있는 듯하다. 그런 신뢰와 배려를 무시하고 행동하는 것이 우리들이 말하는 인 듯하다. 그런데 남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은 타고나는 것일까? 악인은 사회가 만들어 낸 괴물일까? 아니면 내면에 잠재해 있던 악이 어느 순간 표출되는 것일까? 사회에 악을 저지르고 법의 심판을 받은 이들은 어떤 동기로 악과 조우하게 된 것일까? 작가는 악과 악인 그리고 악을 행하는 동기에 관해 이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무거운 주제에 비해 이야기는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어두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야기 전개도 느리지 않다. 오히려 빠르게 느껴질 정도다.

 

우리들은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건의 발생 동기를 알고 싶어 한다. 왜 그런 일을 벌였을까? 이야기에 등장한 악인 474번은 아무런 동기 없이 엄청난 살인을 저지르고 수감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교도관 윤을 만난다. 474번을 담당하는 윤은 가까이하지 말라는 선배의 말도 잊은 체 474번이 왜 그런 끔찍한 사건을 일으켰는지 궁금해한다. 그래서 조금씩 474번과 교감을 갖게 되고 474번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렇게 이야기는 전개되고 신해경이라는 중년 여성이 474번과의 면회를 신청하면서 윤의 궁금증은 더욱 커지게 된다. 주민등록증도 없고 자신도 말하지 않아 신원을 알 수 없었던 474번에게 가족이 있었던 걸까? 신해경이라는 여성은 474번과 어떤 관계일까?

 

신해경이라는 여성의 등장으로 474번은 자신의 이름을 찾아간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교도관 윤에게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듯이 들려준 474번의 삶은 열다섯에 버림을 받고 열일곱부터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악인으로 살아왔다는 전혀 평범하지 않은 슬픈 이야기이다. 474번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자신이 고통을 전혀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니 다른 이들의 고통을 알 리 없다. 그래서일까? 그래서 좀 더 쉽게 악과 가깝게 지낼 수 있었을까? 선천성 무통각증은 유전된 것일까? 그렇다면 누구에게서 유전된 것일까? 474번은 어려서 누나에게 물어본다. 왜냐하면 누나도 같은 증상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소설의 주인공 474번은 법은 일어난 일의 결과로 죄를 판단합니다만 사실 인간은 결과로 죄를 짓는 게 아닙니다. 의도가 죄죠.’(P.127)라고 말한다. 474번의 말에 의하면 그는 죄인이 아니다. 살인이라는 결과는 있지만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474번의 말대로라면 살의 없이 살인을 저지른 그는 죄인은 아닐지 모르다. 하지만 아무런 의도 없이 살인을 저지른 474번은 악인이다. 474번의 말대로라면 마음속으로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하려 하는 사람들은 죄인이다. 하지만 살인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내지 않은 그들은 악인은 아니다. 마음속으로 저지른 살인은 자기 자신에게는 죄이겠지만 사회적으로는 죄는 아니다. 그런데 474번은 의도가 있는 이들은 악인이라 말하고 있다. 죄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들 모두는 죄인이 아닐까? 누구나 한 번쯤은 마음속으로 악을 행했을 테니 말이다.

 

자신의 이름을 찾아가던 그는 자신의 존재를 찾을 수 있을까? 우리들은 이름이라는 것을 통해서 존재를 확인한다. 모든 사물이 그렇고 우리 자신들이 그렇다. 하지만 이름이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 걸까? 474번 또한 사회에서 발행한 확인 번호는 없지만 엄연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존재를 찾아갈 때쯤 또 다른 악이 그에게 손을 내민다. 그리고 그 악행에는 너무나 확실한 동기가 있다. 이제 474번은 죄인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름을 찾는다. 존재를 찾은 것이다. 사람으로서의 존재도 악인으로서의 존재도 찾게 된다.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유령 같은 삶을 살아야 했던 그가 악을 통해서 존재를 찾아간다. 자신의 존재감을 악을 통해서 찾아야 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삶인가? 그런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던 유령 같은 한 사내의 삶을 통해서 존재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인간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고 말하던 책이 떠오른다.

 

474번의 이름을 알아가는 과정도 그의 출생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도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는 작품이다. 흥미롭게 작가가 만들어준 길을 따라가면서 우리의 삶을 우리의 존재가치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이야기가 보여주는 악도 우리의 모습이고 그 악을 품고 다른 이의 악의 동기를 궁금해하는 것도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조금씩 깊어가는 가을에 474번과 함께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아가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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